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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5.05.22

삼례읍 전소순 할머니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5.05.22 11:00 조회 58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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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내 인생의 진정한 봄날 ! - 삼례읍 전소순 할머니 이야기 옛사람들은 사람의 일생을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사계절에 즐겨 비유했다 .

여리고 풋풋한 어린 시절은 봄 , 뜨거운 만큼 서둘러 지나가는 젊은 시절은 여름 , 나보다 훌쩍 더 커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중년은 가을 , 조금은 쓸쓸해도 모든 것이 편안해지는 노년은 겨울에 빗대어졌다 . 하지만 꽃 피는 봄은 어린 사람에게든 , 늙은 사람에게든 어김없이 똑같이 찾아온다 .

전소순 할머니
전소순 할머니

누구에게라도 꽃 피는 봄은 다시 찾아오는 법 ,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에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완주군의 ‘ 진달래 학교 ’ 라는 이름은 그런 의미에서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 올해로 여든여섯이 된 전소순 할머니에게도 이 산 저 산 진달래꽃이 만발한 봄이 다시 찾아왔다 .

“ 그때 내 나이가 73 살이었어 . 남편이 79 살에 돌아가시고 이제는 내 인생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친구 하나랑 진달래 학교를 다닌 거야 . 처음 갔더니 노인네들이 서른 명 정도 있어 . 선생들이 다섯 명 정도 되고 . 어떤 사람은 연필도 잡을 줄 모르고 모두가 아무것도 몰랐지 .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고 어쩌다 보니까 글씨가 써지더라고 . 글 쓰는 것에 취미를 붙이고 선생님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더 잘하고 싶더라고 . 그렇게 지금까지 재밌게 배우고 살아 . 나는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 한 시간 반 공부하는데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워 .

지금은 A, B, C, D 영어도 배워 .” 2017 년 , 완두콩에서 발행한 < 완주할매들의 인생손글씨 할미그라피 > 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던 전소순 할머니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부지런히 기록하고 있다 .

70 년 된 부러진 감나무를 주제로 시를 쓰고 , 손자들에게 편지도 쓰고 , 꽃과 나무를 화려한 색채의 그림으로도 그렸다 . 손자들과 자식 , 사위들이 사다 준 스케치북과 색연필 , 오래 써서 짧아지고 닳아진 연필과 지우개 같은 것들이 초등학생 공부방처럼 할머니의 집안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

할머니가 들려준 인생의 봄날은 그래도 큰 고생 없는 좋은 시절이었다고 했다 . “ 내 고향은 임실군 청웅면이야 . 딸 넷 중에 막내고 내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어 . 언니 셋은 비단 , 광목 , 실 공장에 다니면서 살림 밑천을 벌어왔지 .

그 돈을 우리 아버지는 허투루 쓰지 않고 다 모아서 논 사고 밭 사고 그렇게 살았어 . 그러니 나는 괴로운 것 없이 컸지 . 친정이 먹고 살 만 하니 언니들도 시집을 가고 나랑 남동생은 어려운 시절 지나서 태어나서 별로 고생없이 자랐어 .

아버지가 우리 순옥 ( 어린 시절 이름 ) 이는 비단 공단에 감아서 키운다고 그랬어 . 임실 장날에 간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30 리 길을 걸어 장에 갔다 오면 꼭 내 비단 옷감을 떠왔어 . 빨강 치마 , 노랑 저고리를 만들어서 좋게만 입혀서 내보내고 그랬지 .

그런데 일정시대에다가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학교 공부를 못 배웠지 .” 할머니는 열다섯에 서울로 올라가 남의 집 심부름도 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 남동생 결혼도 시키고 아버지 농기계도 사드렸다 .

공장 다닐 때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함부로 연애하면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린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제대로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스물넷에 중매로 이곳 삼례로 시집을 왔다 . 그렇게 가리고 가려서 시집을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오두막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살림살이였다고 한다 .

남편은 순하고 좋은 사람이었지만 경제적인 능력은 별로였다고 했다 . 그때부터 할머니의 억척스러운 여름과 가을이 시작됐다 . “ 스물다섯 살 동짓달에 첫아기 딸내미를 낳았어 . 그런데 배는 고프고 세상 참 힘들었어 . 하도 배가 고파서 내 저고리 옷감을 신랑보고 쌀 팔아 오라고 했지 .

근데 그 돈으로 노름을 해버리고 빈손으로 오는 거야 . 배가 고파서 언제나 오나 연탄불에 밥솥을 올렸다 내렸다 새벽 내동 그러고 있는데 빈손으로 오는 거야 . 그래도 미운지도 모르고 싸움할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산 거지 . 그래도 주인집 큰방 아줌마가 씨래기국을 끓여서 밥이랑 한 대접을 가져다 줬어 .

그걸 나눠 먹었지 . 두 살 터울로 여섯 남매를 낳고 키우는 동안 삼례에서만 이사를 열두 번을 넘게 다녔어 .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옛날 삼례시장 안에 집을 샀지 . 그때 돈을 어떻게 마련했냐면 내 시계 팔고 반지 팔아서 마련했지 .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내 집을 산 거야 .

거기서 육남매 다 학교 보내고 키웠어 . 고추장사 , 쌀장사 , 식당 , 농사 일 안 해본 거 없이 다 하고 살았어 .” 요즘 결혼식에서는 폐백음식이 많이 없어졌지만 , 사실 전소순 할머니는 제법 솜씨 좋은 폐백음식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쉰 무렵부터 어렸을 때 번화하고 제사가 많았던 친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폐백 일을 시작했고 일흔이 될 때까지 20 여 년 동안 그 일을 하셨다고 한다 . 젊은 엄마들 서너 명에게 폐백음식 전수하는 솜씨좋은 선생님이었다 . “ 내 나이 쉰 살 무렵부터 폐백을 한 거야 .

처음에는 묵을 끓여서 피로연 음식으로 납품을 했어 . 묵 끓이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 메밀묵 두세 판씩 만들어서 납품한 거지 . 그 뒤로 오징어 오려서 장식하는 폐백음식을 만들었어 . 오징어를 그냥 오리면 안돼 . 가운데 뼈다구를 갈라내고 다리 떼어내고 하얀 면보 깨끗한 것을 깔아 .

그 위에 오징어를 착착 올려놓고 천을 덮어서 발로 잘강잘강 밟아 . 한 시간을 밟으면 납작하고 반듯하게 펴져 . 주름살 하나 없이 펴져 . 그럼 그 판판해진 오징어 가운데를 잘라서 가위로 세심하게 가늘게 오려서 작업을 하는 거지 . 자르면서 하나하나 손으로 말면서 작업을 하는 거야 .

옛날에는 밤도 하나하나 까서 쌀뜨물 , 설탕을 타서 저녁 내내 담궈 놓고 그랬지 . 대추는 가운데 실을 꿰서 뱀이 똬리 틀 듯이 뺑뺑 돌려서 탑처럼 쌓아놓는 거야 .

할머니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그림들이 드물게 화려하고 꼼꼼한 터치가 많아서 참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 폐백음식 전문가셨다니 그 그림들의 색채와 스타일이 어디서 연유했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

그렇게 길고도 힘들었던 인생의 여름과 가을이 가고 일흔이 넘어 글을 배우고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봄 같은 겨울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의 글씨 연습장에는 좋은 말들이 가득했다 .

그 좋은 말들 중에 봄날의 새순처럼 세상에서 제일 보드랍고 고운 단어들만 골라 손끝으로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 .

“ 한글을 몰랐을 때는 창피하고 답답한 것이 많았는데 칠십이 넘어서야 진달래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한글을 알게 되니 내 인생이 얼마나 당당하게 변했는지 알랑가 몰라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삼례읍 전소순 할머니 이야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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