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선 정인철 사장.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 사장님은 주방 들어갈 때는 꼭 흰 와이셔츠를 입는다. 저녁에 깨끗이 씻고 아침에는 꼭 머리를 감는 것도 쭉 지켜 온 철칙이다. 고산면 정인철 .
고명순 부부이야기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 고산우체국 골목에 있는 중화요리집 일월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가야 했던 아끼고 아끼던 취재원이었다 . 이유는 차고 넘친다 .
우선 日月星 이라는 한자로 써진 가게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 무엇보다 잡채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차림표에 새겨진 글씨가 손글씨인지 컴퓨터 글씨인지도 궁금했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이 왜 꼭 하얀색 와이셔츠를 고수하는지도 궁금했다 .( 짜장면 가격이 4 천원인 이유는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뜸한 오후 3 시에 일월성의 정인철 (72 세 ), 고명순 (63 세 ) 사장님 내외를 만났다 .
일월성 , 세상 만물을 담아낸 이름이지요 “ 가게 이름은 내가 지었어요 . 하나의 해와 하나의 달 그리고 수많은 별 , 세상 만물 아니야 . 그것이면 족하지요 . 가게 이름을 정하고 내 나름대로 가게를 상징하는 멋있는 간판을 달고 싶더라고요 .
수소문 끝에 그 당시에 대아리 음수동 마을에 살고 계셨던 서예가 금영 ( 錦影 ) 이영철 선생님을 찾아갔지요 .( 일본 동경대에서 강단에 섰던 금영 이영철 교수 . 서울대 출신 . 동양철학의 석학으로 일본 ,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쪽 학계에 이름이 더 알려짐 ) 무릎을 몇 번이나 꿇었는지 몰라 .
처음에는 선생님이 ‘ 내가 간판쟁이냐 ’ 며 화를 내셨어요 . 그래도 계속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부탁을 하니까 나중에는 물어보시더라고요 . 왜 일월성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
그래서 내가 뜻을 말씀드렸더니 그 말이 마음에 드셨는지 글씨를 써주셨지요 .” 고산 읍내가 고향인 정인철 사장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중국요리집에서 일을 배웠다 .
나무로 틀을 짠 무거운 철가방을 들고 배달일부터 시작해 그릇을 닦고 양파를 썰고 수타면을 뽑고 요리를 할 수 있는 불 앞에 서기까지 어느 계단 하나 허투루 거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올라섰다고 한다 .
그렇게 평생의 일을 배우고 아홉 살 터울의 아내를 만나 천호동에 구일관이라는 중국요리집을 내기도 했지만 30 년 서울살이를 접고 80 년대 중반에 고향 고산 읍내로 다시 내려와 지금의 일월성을 시작했다 . “ 고산 내려와서 처음에는 영 미용실 옆에서 8 년 정도 장사를 했어요 .
그때도 이름이 일월성이었지요 . 그땐 용담댐에서 일하는 건설회사 직원들이 많이 왔었어요 . 이 시골에 중화요리 안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을 자주 왔었지요 . 고급안주를 내가 잘 만들었거든 . 그 당시 장사가 잘 됐어요 .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했더라면 돈도 많이 벌었을 거야 . 그런데 나는 가족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 내가 우리 애들 등하교를 전부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그랬지 . 큰 애는 익산에서 교사하고 작은 애는 서울시 공무원이고 . 고맙게 애들이 알아서 잘 컸어요 .
그때만 해도 소고기 파는 가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 그러니까 외식할 곳이 중국요리집이 유일했으니 장사가 잘 됐지요 . 그때만 해도 재료가 비싸지 않아서 요리도 많이 했어요 . 삭스핀도 팔고 해삼탕도 팔고 그랬지요 . 지금은 재료 가격이 너무 올랐어요 . 예전처럼 다양한 요리를 하기 힘들지요 .
95 년도에 이 자리로 옮겨서 지금까지 일월성을 운영하고 있어요 . 요즘은 탕수육 , 잡채밥 , 짜장이 제일 맛있다고 해요 . 그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일 잘 나가는 메뉴는 짜장면 , 짬뽕이지요 .
쌀쌀할 때는 짬뽕이 더 잘 팔리고요 .” 지금도 그렇지만 젊었을 땐 멋쟁이였어요 벌써 10 년 가까이 일월성에 드나들었지만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 주방과 홀 사이에 난 작은 문틈으로 불 앞에서 부지런히 웍을 돌리는 사장님은 언제나 하얀색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
가끔 오후 두 시 너머 점심 장사를 마치고 가게 입구 옆 볕 좋은 계단 참에서 쉬고 계실 때도 표정 없이 맞은편 지붕 위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 지금은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무림의 숨은 고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 .
“ 이제는 그러지도 않아요 , 옛날 말대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거 같아요 . 흰 셔츠는 깔끔해 보이려고 입어요 . 나는 항상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 저녁에 깨끗이 씻고 아침에는 꼭 머리를 감아요 . 그건 꼭 지키려고 하지요 . 주방 들어갈 때는 꼭 흰 와이셔츠를 입어요 .
겨울에는 추우니까 검은색 조끼를 입고요 . 나름 내가 고수하는 패션이에요 .” 가만히 듣고 계시던 부인 고명순씨도 한 마디 거든다 . 젊었을 때부터 옷도 잘 입고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 그 당시에 백바지 입었으면 말 다한 것 아니냐며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주신다 .
둘이 만나 40 년이 넘도록 함께 손발을 맞추며 한 길을 걷고 있다 . 늘 하던 일이지만 주방에 들어가면 늘 긴장 상태가 된다고 한다 . 7~8 킬로 되는 웍을 한 손으로 휘둘러야 하고 칼 다루며 재료를 썰어서 순서대로 조합해서 볶아내야 하니 다른 생각 할 틈이 없다 .
손님들이 맛있게 드셨다면 그걸로 족해요 고산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늘 다니는 몇 군데 식당이 있다 . 칼국수가 맛있는 집이 있고 , 백반 반찬이 마음에 드는 집이 있고 , 뼈다귀탕이 얼큰한 집도 있다 . 그리고 일월성에 오면 열에 아홉은 잡채밥을 먹는다 .
저마다 식성이 달라서 뭐가 제일 맛있다는 말은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나는 불맛이 그윽하게 배어 있는 일월성 잡채밥을 최고로 친다 . 마지막 질문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고야 말았다 . 음식 값이 너무 싼 것 아니냐고 .
“ 짜장면 한 그릇이 4 천원이니까 , 우리집 가격이 이십 년 전 가격이에요 . 우리 집 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둘이 와서 자장면 두 그릇 시켜놓고 그마저도 좀 깎아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
그런 손님이 있는 반면에 여러 사람이 와서 음식 많이 시켜 드시고 가격이 이거밖에 안 나왔냐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 하고 인사해 주시면 힘이 나요 . 그래도 장인이라는 소리는 대단한 사람에게나 하는 소리인데 , 나는 그쪽에는 못 들어요 .
그런 소리는 여기다 내놓으면 골치가 아파요 . 하하 . 나는 뭐 그저 평범하게 시골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지요 .” 어린 아이가 겁도 없이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내려서 처음 배운 기술이 중국요리 만드는 것이었다 . 그리고 일흔이 넘도록 불 앞에서 요리를 만들어 낸다 . 이 정도면 장인 아닐까 ?
호들갑스럽게 장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괜히 꾸지람을 들었다 . 오랫동안 장사해달라고 부탁하는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 어쩌면 특별한 장인보다는 평범한 시골 중국집 사장님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이 일월성을 오래도록 드나들 수 있는 길이겠다 .
정인철 사장님의 마지막 말이 근사해서 한 줄 남겨 본다 . “ 어느 당신이 되었든 간에 당신이 잘 먹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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