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를 탄 할머니를 지긋하게 바라보는 정선량 어르신. 전주에서 서울까지 ktx 를 타면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고 오늘 인터넷으로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내일이면 받아서 먹을 수 있고 다른 대륙 먼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이젠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
빨리 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자동차들을 위해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들은 반듯하고 넓은 도로들로 하루하루 변해가고 있고 무엇이든 빠른 것이 미덕인 시대 , 우리는 바야흐로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 빠른 것이 효율이 높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
무엇보다도 그 속도들을 따라잡지 못하면 시대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좀 무섭기도 한 이 세상에는 그래도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느긋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베스트 드라이버들이 있다 .
오늘은 시속 15km 의 속도로 달리며 세상을 유람하는 소양면 명덕리 삼태마을 정선량 (87 세 ) 할어버님과 이영준 (83 세 ) 할머님의 유유자적 느릿느릿 運轉記 를 소개한다 . “ 전에는 자전거 타고 봉동까지 다니곤 했지 .
갈수록 힘이 없으니까 아들이 전기 오토바이를 사주고 그 다음에 전기차까지 사줬어 . 열 시에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서서 열두 시 반에 집으로 와 . 점심 먹고 조금 쉬다가 이제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
두 시부터 세 시까지 소양면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이번에는 전기차타고 용진으로 가서 소양면사무소까지 한 바퀴 돌아서 들어와 . 집에 돌아오면 다섯 시 넘지 .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쉬고 다음날 또 똑같이 드라이브를 나가는 거지 . 나는 드라이브를 좋아해 .
전기차 타고 멀리 나갈 때는 전주도 가고 위봉폭포나 오도재 까지도 가보고 고산휴양림도 가봤어 . 나같이 늙은 사람은 남는 게 시간이야 . 그냥 가만히 있는 거 보다 이렇게 천천히 길을 달리는 거지 . 차 안에서 음악도 들어 . 노들강변 , 아리랑 , 한오백년 . 민요를 듣지 .
애환 섞인 노래를 들으며 길을 달리면 가슴이 이상해 . 울컥할 때도 있고 말이야 .” 어르신 내외는 지금 살고 계시는 소양면 삼태마을이 태어난 고향이다 . 집안 어르신들이 혼약을 맺어놓은 상황이어서 군대 제대하고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정선량 할아버님은 어린 시절에 전주사범학교를 다니셨다 .
새벽 네 시에 길을 나서면 날이 밝아지는 걸 보며 걸어서 전주에 있는 학교에 가고 깜깜한 밤중이 되어야 다시 집에 올 수 있었다고 한다 . 학교를 마치지 않았는데 6.25 전쟁이 터졌고 전쟁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군대를 가게 됐다 .
사범학교 출신이라 군수기지사령부 공병참모부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 몇 년 후에 상관이던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 이영준 할머님 친정은 동네에서 제법 잘 사는 집이었지만 할아버님 형편은 그렇지 않아 남의 집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
남의 집 품 팔아가며 살았지만 육남매를 낳고 조금씩 돈을 모아서 논도 사고 밭도 샀다 . 그렇게 늘려간 살림에 지금은 삼태골짜기에 제법 너른 전답을 갖고 있다 .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르신 내외는 서로를 지긋하게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칭찬해 주셨다 . “ 애들 아버지가 그래도 헛짓은 안했어요 .
술 안하고 도박도 안 하고 그렇게 착실하게 돈을 차곡차곡 모으다 보니까 잘 살게 되더라고요 . 지악스럽게 살았지 . 사람이 아무것도 없어도 신용이 있어야겠더라고요 . 내 시집보내기 전에 집안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들었어요 . 아무것 없어도 사람하나 보고 보낸다고 .
살아보니까 살림이 없어서 그렇지 사람 하나는 괜찮더라고 . 이 양반이랑 살아서 여태껏 좋더라고요 .” 할아버지는 전기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뒷자리에 할머니를 굳이 앉히려 하신다 . 할머니는 공간이 좁고 딱딱해서 허리아파 싫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할아버지는 굳이 태워놓고는 개구지게 웃는다 .
그 모습에 나도 왠지 마음이 간질간질 해지더란 말이다 . “ 나는 자식들한테 다른 말 안 해 . 그냥 재밌게 살으라고 그래요 . 그 말만 해요 . 내외간에 잘 살면 모든 게 다 끝나버려 . 자식 교육 같은 것도 필요 없어 . 내외간에 잘 살면 자식들은 무조건 부모 따라하게 되어있거든 . 단순해 .
나도 우리 안 사람이랑 몸은 고생하며 살았는데 인생 재미있게 산 편이야 . 이 삼태골짜기에서는 내가 돈도 많이 벌었어 .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 . 가지고 있던 땅도 균등하게 나눠서 아들 딸 차별 없이 다 나누어 줘버리고 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고 . 병원비랑 약값도 자식신세 안 져 .
내 몸에 들어갈 돈은 딱 마련해 놓으니까 자식들한테 손 안 벌려 . 그러니까 서로 좋아 .” 전기차에 장착된 선풍기와 블랙박스.
대문 안쪽 목련나무가 예쁜 어르신 집 오른 편엔 자전거와 전기오토바이 , 소형 전기차 그리고 할머님이 타시는 전동차가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전용 주차공간이 널찍하게 자리하고 있다 . 예전엔 농사짓는 데 필요한 것들이 빼곡하게 자리했을 공간에 이제는 느린 드라이브에 필요한 탈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
농사일을 접은 지 이십년 쯤 지났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움직이려고 한다 . 속도는 느리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만나고 음악을 듣고 흘러가는 바람을 따라가며 계속해서 움직이려고 한다 . 움직이는 것에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 그저 움직이는 것이 중요할 뿐 .
“ 지금은 혼자 이렇게 타고 다니는데 몇 년 전에는 이 마을 친구들 대여섯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 따라 돌아다녔어 .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 . 그럼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어르신들 멋있다고 박수를 쳐주곤 그랬지 . 자전차 타고 다니다가 sbs 기자가 와서 인터뷰도 했어 .
그 친구들이 지금은 다 죽고 한 명 남았네 . 한 친구는 이제 힘이 없어서 자전거도 못 타 . 내가 큰 아들하고 막내아들 오토바이를 각각 한 대씩 사줘버렸어 . 한 대에 사천씩 하는 비싼 건데 . 재밌게 사는 것이 인생 목적이어야 되니까 .
형제간이 일요일이면 수원 , 안성에서 오토바이 타고 우리 집에 와서 점심 먹고 쉬었다가 가 . 아들들이 들락날락 하니까 좋지 .” 어르신을 알게 된 것도 어쩌면 매일 같이 느리게 그 길을 달리는 어르신의 속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
몇 년 전 매주 소양 다닐 일이 있었는데 갈 때 마다 머리가 하얀 어르신이 작은 삼륜 전기차를 몰고 천천히 도로를 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추월하기 애매해서 어르신 전기차를 뒤따라가면 속도가 딱 시속 15km 였다 . 어르신들은 지금 이 집터에서 40 년을 사셨다고 한다 .
원래는 방 두 칸 초가집이었는데 삼십이 년 전에 허물고 지금의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 . 그 당시 동네 어르신들이 이 집 터가 좋다고 그랬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 애들 다 잘 되고 우리 내외도 잘 늙었으므로 .
다른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온 어르신 내외는 누가 뭐래도 인생의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 앞으로도 천천히 안전하게 드라이브를 즐기시기를 .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