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친구 김순천 아저씨 - 인풍마을 임풍분재원 김순천 분재 ( 盆栽 ) 는 작은 화분에 식물을 심고 가꾸어 대자연의 큰 나무나 풍경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 분재의 세계를 몰랐을 땐 분재가 그저 조용한 어르신들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
고산면 양야리의 화정저수지를 끼고 돌면 안수산과 서래봉 , 서방산 , 수양산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인풍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마을 이름과 비슷한 임풍분재원 ( 林豊 ) 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
각파이프를 구부려 만든 독특한 분재원 간판에 이끌려 나무친구 김순천 (65 세 ) 아저씨를 만나게 됐고 그가 나무들을 위해 만든 집 ( 하우스 ) 이 대문 옆에 있는 두 곳 뿐이 아니라 집 전체를 빙 둘러 아홉 개의 나무집을 가꾸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머니 이정례님과 함께 “ 분재원의 대표는 내 동생 김순철이야 . 내 동생이 유명한 사람이지 . ‘ 나라꽃무궁화 전국축제 ’ 무궁화 분재로 대통령상 , 국무총리상 등 상도 많이 탔지 . 그 작업 과정에 나도 늘 함께 했었어 . 우리 형제가 함께 하는 분재원이니까 .
바깥일과 큰일을 동생이 주로 하고 나는 분재원을 지키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무 소개도 하고 편하게 접대해주는 사람이지 . 우리 분재원에 있는 나무가 몇 종류나 되냐고 물어보면 이제는 하도 많아서 대답을 못해 . 그래서 틈만 나면 나도 공부를 하는 거야 .
제대로 설명해 주려면 사진도 보고 책도 읽으면서 공부해야 해 . 여기 있는 책들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어 .” 분재원의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 아저씨가 살고 있는 마을과 오래된 흙집과도 구분되지 않고 할머니가 가꾸는 오래된 텃밭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
어떤 동은 전라북도 도청 분재들을 대신 관리해주는 곳 , 어떤 동은 상태가 안 좋은 나무들을 보살피는 병원 같은 곳으로 기능이 나뉘어져 있었고 마당 한 켠에는 아저씨의 다용도 작업실도 있었다 .
그곳에선 마을 어르신들이 커피를 마시고 귀촌한 청년들이 농사 상담을 하고 , 수시로 드나드는 분재 애호가들이 아저씨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다가 펼쳐진다고 한다 . “ 아침에 여섯 시 넘으면 바로 일어나 . 뉴스와 날씨를 보다가 나와서 커피 한잔 마시지 . 아침밥은 안 먹어 .
커피 한잔 마시면서 보이는 일을 시작하지 . 여기는 전라북도 도청 분재 나무들을 대신 관리해주는 동이고 저기는 상태가 안 좋은 애들을 맡겨놓는 곳 말하지면 나무 병원이야 . 아픈 애들 여기로 데리고 오면 살려서 보내는 . 우리 분재원 단골 손님들한테는 가끔 오토바이 타고 출장도 가지 .
여기서 데리고 간 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보러 다니는 거야 . 요즘에는 동네 이사 온 귀촌한 젊은이들이 자꾸 놀러와 .
땅도 알아봐주고 농사 이야기도 하고 나무 이야기도 하고 그래 .” 나무는 씨앗을 통한 번식 이외에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술인 삽목 , 접목 , 취목을 통해서도 번식을 한다 .
까마귀베게 , 개쉬땅나무 , 무늬등나무 , 안경테버드나무 , 가막살나무 , 느릅나무 , 장수보 , 화련광 , 금채 , 녹산 , 정광 .... 분재를 소개해 주시는 아저씨의 레퍼토리는 끝이 없다 . 2 천 종류가 넘는다는 철쭉과 특별히 좋아하는 명자나무를 소개할 때는 오히려 말씀을 아끼셨다 .
‘ 전라북도에 있는 명자나무와 철쭉은 거진 우리 집 새끼들이라고 보면 되지 ’ 그 정도의 표정 ! 분재원에 있는 아홉 개의 나무집 ( 하우스 ) 과 집 앞 밭에서 자라고 있는 큰 나무들까지 대충 설명해주셨는데도 순천 아저씨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
언제부터 나무들을 좋아하고 함께 했는지 궁금했다 . 뿌리올리기 작업을 해놓은 모습 “ 지금 사는 이 집이 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곳이야 . 방 두 칸이었는데 팔남매와 부모님이 함께 살았지 . 나는 열일곱 살에 돈 벌러 서울로 갔지 . 자개공장을 다녔어 .
서울서 공장 다니다가 김제 자개공장까지 가봤는데 육 개월 다니다가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 스무 살이 지나서 나는 내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어 . 날 좋아하지 못하는데 누굴 좋아할 수 있었겠는가 . 그렇게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살게 된 거지 . 이십대 시절이 진짜 힘들었어 .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사람 많은 곳을 못가고 .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모르겠고 그저 숨이 안 쉬어지고 . 그러다가 스무 살 후반에 만난 나무 덕에 내 인생이 달라졌어 . 내 동생이 먼저 나무일을 시작했었거든 . 집 앞 땅에 조경수를 심어 팔기 시작한건 한 40 년 전이야 .
동생은 그 사이 분재 관리사 자격증도 따고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고 나는 나무를 손질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 .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 증상이 요즘말로 공황장애였던 거야 . 나중에 병원에서 진단받고 약 먹으면서 그런 증상이 싹 사라졌어 . 술도 끊고 .
나무 만나서 새 삶을 살게 된 거지 .” (위) 십대시절 펜으로 그린 화투그림 (아래) 떨어진 나무잎으로 만든 빗자루 아저씨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화투짝을 늘어뜨려 놓고 볼펜으로만 화투짝과 똑 같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나무를 깎아서 지게도 만들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형제들과 함께 흙 져다 이기고 다져서 지은 것이다 .
아저씨의 타고난 감각과 기술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나무의 시간을 헤아려 살아가는 마음이 더해져 분재원의 나무들은 따듯한 오월의 햇살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것이 가끔은 후회도 되지만 마음은 지금도 이십대 시절 그대로여서 함께 살고 있는 노모 ( 이정례 .
93 세 ) 와 나무들과 더불어서 오래토록 힘닿는 데까지 나무친구로 살아갈 거라고 하셨다 . 분재원의 나무들에게 한 마디 부탁했다 . “ 사랑한다 . 같이 가자 . 그거지 뭐 . 간단해 . 내 인생 , 내 몸 다 바친 거야 . 이 나무들 없다고 생각하면 사는 재미가 없어 .
분재원 오는 손님들이 이렇게 좋은 기술 가지고 결혼 안하고 사냐 그런 말들 많이 하지 . 그래서 내가 여자 손님들 오면 재밌게 해줘 . 농담도 해가면서 . 툭툭 던지는 말이 좋아서 하는 말이지 싫어서 내던지는 말이 아니야 . 웃길라고 .
넘들 보면 툭 쏜다고 할 테지만 그런 스타일이 일종의 내 애정표현이지 . 아는 사람은 다 알아 . 나는 아흔 셋 노모를 내가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해 , 누가 누굴 모시는 것이 아니라 . 나는 오히려 어머니 힘을 많이 받아 .
내가 오죽하면 어머니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간다는 소리를 해 . 이십대 때부터 그랬어 . 그 소리를 . 엄마 없으면 힘이 없어 . 평생을 같이 살았으니까 . 엄마가 다른 자식들한테 아쉬운 소리 못하고 욕도 못해 . 나한테는 험한 소리도 다 해 . 그 만큼 편한가봐 . 그리고 내가 찌개도 잘 끓여 .
어머니도 맛있다고 잘 드셔 .” 돌배나무 , 참빗살나무 , 아그배나무 , 으름덩굴 , 느릅나무 , 탱자나무 , 해당화 ... 나무친구 순천아저씨에게 수많은 나무와 꽃들을 소개받았지만 다 거명하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것들만 쓰게 돼서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
더 많은 나무와 꽃들이 궁금하다면 임풍분재원에 들러 순천아저씨를 만나보시라 . 순천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나무 구경을 하다가 그가 가리키는 손끝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김없이 찔레꽃 , 장미꽃 , 해당화가 활짝 피어 있을 것이다 . * 다만 조용한 마을에 자리한 곳이니 소란스러운 방문은 조심해야 한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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