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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2.05.19

흙집아 너도 늙었고 나도 참 많이 늙었구나!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5.19 15:47 조회 1,0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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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율마을 이정수 할머니 이야기 휑하던 마을회관 앞에 어르신들의 보행기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했다 . 코로나로 인해 2 년 동안 닫혀있던 마을회관 문이 비로소 열렸다 .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아보는 것 . 평범하고 당연했던 일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

외율마을 여덟 할머니들은 요즘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고 한글을 배운다 . 이사 온 젊은이가 할머니들 적적하실까봐 벌인 작당모의인 것이다 . 이제 허리 아파 밭일도 못하신다면서 어디 계시나 찾으면 어김없이 밭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 .

IMG 1982
IMG 1982

손힘이 없어 글씨도 삐뚤빼뚤 쓰신다는 할머니들은 호미질 할 때는 머뭇거림이 없다 . 여덟 할머니의 이름은 김부임 , 고순자 , 국순여 , 권철 , 이소순 , 이정수 , 손옥선 , 정정자 . 할머니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임을 느끼게 된다 .

어느 순간은 할머니가 일곱 살 아이가 되어 화롯불에 콩을 구워먹고 ,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나 싶더니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사십대 여인네가 되어있다 . 이야기들이 어찌나 생생한지 어제 있었던 일 같기도 하다 .

할머니들 중 여든 여덟 해를 살아 온 맏언니 이정수 할머니의 집을 찾아갔다 . 할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흙집을 보기 위해서다 . 정갈한 마당에 들어서면 옛집과 삼십년 전에 새로 지은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 “ 우리 아버지가 이 집을 짓고 그해 나를 낳았디야 . 그러니까 88 년 된 집이지 .

나는 스무 살에 화산 질마재로 시집가서 애 다섯 낳고 살다가 1970 년에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어 . 그 당시 우리 오빠가 저 흙집에서 살다가 전주로 이사 간다고 나보고 이 집에서 우선 살으래 . 집값은 살면서 갚으래 . 그 당시 우리 영감이 화산 삼거리로 방아를 찧으러 가면 꼭 화투를 쳐 .

그 삼거리가 깡패도 있고 , 노름하는 사람도 있고 주막도 있고 그러니까 환경이 안 좋았어 . 고산으로 다시 오라는 소리 듣고 이사 온 거지 . 흙집에서 살다가 영감님 환갑 되던 해에 이 집을 짓고 여기서 쭉 살고 있어 .” 88년 전에 할머니의 아버지께서 지으신 오래된 흙집.

예전의 외율마을은 녹두밭 웃머리라서 땅이 척박하고 골짜기에 들어앉은 마을이라 논밭이 적었다고 한다 . 그래도 이정수 할머니는 열심히 땅을 일궜다 . 농사짓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그 와중에 동네사람들과 쌀 계를 해서 돈을 모았다 . “ 그때는 돈도 없으니까 쌀 계를 많이 했어 .

내가 오십 가마니 계 왕주를 했어 . 왕주하면 1 번으로 타 . 탄 돈으로 오빠한테 빚을 갚았지 . 그 당시 한 가마니 당 십만원씩 해서 오십만원이여 . 영감이랑 논일을 많이 했어 . 쌀로 돈을 갚아야 하니까 농사를 쉴 새 없이 지었지 . 그렇게 이 집을 샀지 , 내가 번 돈으로 .

이 집 , 논 열두 마지기도 다 내 재산이야 .” 이정수 할머니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부녀회장을 맡게 된 1971 년부터 80 년대 무렵이지 않을까 싶다 . 그 당시 고산면에서 날렸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면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을 것이다 . “ 양로당 처음 지었을 때 내가 부녀회장해서 살림을 도맡아 했지 . 권철 , 정정자 , 나 셋이서 살림을 주관했지 . 남자들도 많고 여자들도 많고 . 큰 상을 세 개나 놓고 먹었어 .

계도 많이 들고 한국 땅에서는 관광차타고 안 다닌데 없이 많이 놀러 다녔어 . 관광차타고 여기서 뛰기 시작하면 그 끄터리까지 뛰고 거기서 뛰기 시작하면 여기까지 와서 뛰고 그랬어 . 휴게소 가서 쉬어야만 쉴 수 있었어 . 앉아있덜 못해 . 통로에 꽉 들어차서 춤추느라 바쁘지 앉아있을 시간이 어딨어 .

참 잘 놀았어 . 그때가 좋았지 . 내가 돈이 없으니까 그 대신 부녀회장하면서 동네 큰일 많이 맡아서 몸과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앞장섰어 . 그걸 알아줘서 동네에서 경로패도 받았지 ” 할머니는 같은 마을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늘 해주는 말이 있다 .

돈 그만 벌고 영감 살아있을 때 열심히 놀러 다니라고 . 몸 성할 때 벌은 돈 써가면서 세상 구경다니라고 . “ 나도 이 손으로 논매고 퍽이나 고생했어 . 일 퍽 했어 . 농사지으니까 배는 안 굶었는데 . 그때 이 동네 여자들이 여럿이 모여서 장에 나갔어 . 나도 혼자 가라고 했으면 못 갔어 .

허물없으니까 같이 따라서 갔지 . 복숭아 , 참외장사 , 감도 팔고 밤도 팔고 산에서 나오는 거 죄다 주워다 팔았지 . 고구마대하고 갈퀴나무도 팔았어 . 갈퀴나무가 뭐냐면 소나무가 가을이 되면 단풍들어서 노랗게 떨어지는데 그걸 긁어다가 팔았어 .

봉동장이랑 모래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 봉동장에 갈 때는 리어카에 담아서 싣고 가서 팔았지 . 소나무 껍데기도 벗겨서 팔고 . 솔방울도 주워서 팔고 . 이 동네는 그런 장사꾼이 많았어 . 가난하게 살았지 .

그러니까 너도나도 장사하고 살아야 해 .” 흙집과 30년 전에 할머니가 지은 새 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기역자 모양으로 여전히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다.

할머니가 태어나던 해 , 그러니까 88 년 전에 할머니의 아버지께서 지으신 오래된 흙집과 30 년 전에 할머니가 지은 새 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기역자 모양으로 여전히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 토방에 앉아 오래된 흙집을 가만히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은 애잔하면서도 평화로웠다 .

아침에 마당으로 나와 그 흙집을 바라보며 ‘ 너도 늙었고 나도 참 많이 늙었구나 , 너랑 나랑 같이 늙어가는 구나 ’ 그런 말들을 되뇐다고 한다 .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평화로우면서도 애잔한 것이다 .

마을에서 함께 아이 키우며 늙어가는 관계 ,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며 또 그렇게 살아간다 . 그렇게 함께 공유한 경험은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 할머니 화단에는 하얀 목단이 한창이다 . 젊은 시절 이웃집에서 얻어온 씨앗이 오십년 세월을 피고 지고 또 피어났다 .

할머니의 마당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삶 또한 풍요로워졌다 . 자주 찾아뵙고 그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싶다 . 호적상으로 이정수이지만 동네에서는 정순이라고 부른다.

할머니가 받은 경로패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흙집아 너도 늙었고 나도 참 많이 늙었구나!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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