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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18.08.06

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18.08.06 13:26 조회 1,6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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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고산읍내 현대장 주인 구광임씨 어렸을 때 나에게 공중목욕탕은 무서운 곳이었다 . 그 무서움의 서사를 되짚어 가다보면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있다 . 그 억척스러움을 생각해보면 녹록지 않던 시절이 떠오른다 .

여름에는 고무대야에 받아 놓은 물 한바가지 뒤집어쓰면 된다지만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씻는 일이 큰 일이 된다 . 늦잠자기 좋은 일요일 아침 , 등짝을 몇 대 맞고서야 간신히 일어나 삐쭉 내민 입을 하고서 엄마 뒤를 따라간다 . 목욕탕 안에는 이미 끌려 들어온 꼬마동료들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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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이 감돈다 . 엄마는 일단 온탕으로 나를 유인한다 . 때를 불리려는 속셈이다 . 도망 다니다 늘 그렇듯 조그만 목욕탕의자에 앉아 때밀이 형벌을 당했다 . 가끔 오는 목욕탕이니 엄마는 억척스럽게 그 동안 묵힌 때를 벗기곤 했다 . 눈물이 그렁그렁한 꼬마들을 달래는 것은 언제나 바나나우유였다 .

냉탕에서 몸을 식히며 구경하는 목욕탕 풍경은 기묘했다 . 어른들은 왜 뜨거운 물을 시원하다고 할까 . 숨 막히게 더운 사우나 방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 2018 년 한 여름 , 아무도 없는 시골의 작은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다 .

더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80 년대의 동네 목욕탕 풍경이 생생하게 겹쳐져 보인다 . 고산 읍내의 유일한 모두의 목욕탕 90 년대 . 명동에 사람 많듯 고산읍내에도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 현대장은 그 무렵에 지은 공중목욕탕이다 .

집집마다 목욕탕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때니 쉬는 일요일이면 행사 치루 듯 모두 목욕탕으로 향했을 것이다 . 목욕탕 시작한지 2~3 년 후에는 옆에 살림집을 헐고 건물을 세워 여관을 지었다 . 목욕탕과 여관 건물이 생김새가 달라 각기 다른 건물처럼 보이지만 1 층으로 들어가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여관의 2 층은 일반 숙박객들이 머물고 3,4 층은 주로 장기 숙박객들이 머무는 곳이다 . 목욕탕의 1 층은 여탕 , 2 층 남탕 , 3 층은 주인네가 사는 집이다 . 흥하던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빠져나간 시골 읍내의 목욕탕은 잠시 문을 닫았다 .

그리고 2014 년 8 월 14 일 구광임씨 (60 세 ) 가 현대장의 새 주인이 되었다 . 친언니가 운영하던 목욕탕과 여관을 인수해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 처음 1~2 년은 고생이 심했다 .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겪는 텃세였다 .

화산이 고향이지만 익산 왕궁으로 시집가서 그곳에서 아이 낳아 키우고 농사짓고 축사에서 돼지 키우며 청춘을 보내고 말년에 다시 돌아왔으니 아는 사람도 없었다 . “ 텃세가 참 무섭데 .. 처음에 장사 시작하고 한 6 개월은 엄청 힘들었어 .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이야기 하면 좋겠는데 , 이야기가 돌고 돌아서 안 좋은 이야기로 나한테 흘러 돌아오는데 , 그것이 참 힘들더라고 . 내가 성격이 화통한데 그걸 참고 사니 살이 쫙쫙 빠지더라고 . 참으면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한 판 붙었지 .

‘ 고산바닥에서 무서운 사람 못 본 모양인데 어디 한번 해보자 ! 나 무서운 것 없는 사람이야 !’ 질러 버렸지 .” 목욕탕 내부 자동 안마기 요금표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

요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갑질 하는 사람들 소식에 속 시끄러운데 구광임씨의 대처법이 한 여름 소나기처럼 속 시원하다 . 화통한 성격만큼 뒤끝도 없다 .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 “ 할 말은 해야 병이 안나 . 처음 6 개월 진짜 힘들었다고 했잖아 . 그때는 목욕탕 들어가지도 않았어 .

근데 푸닥거리 한 번 하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그 이후로 지금껏 아침마다 어울려서 목욕해 . 아침 5 시 30 분에 문을 여는데 5 시도 안 되서 손님들이 와 . 허물없이 들어와서 먼저 씻고 있는 거야 . 자기 집처럼 .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 보통 2~3 시간은 기본이야 .

그런 것을 혼자서는 못해 .. 여럿이 어울리니까 하는 거지 . 내 몸 씻는 것도 있지만 사실 손님들이랑 친해지려고 함께 하는 거야 . 서로 속도 알고 마음을 여는 거지 . 우리 목욕탕 손님들은 피부가 아주 난들 난들해 .

같이 목욕하면서 화장품 뭐가 좋더라 치약 뭐가 좋더라 비누는 뭐가 좋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는 거지 . 서로 마사지 하는 재료를 만들어 와서 함께 발라주고 .” 아파트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장기숙박객 만들어준 열쇠걸이. 열쇠를 매번 소쿠리에서 찾는것이 불편해 보였는지 직접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어 린 시절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구경하던 목욕탕의 기묘한 풍경 . 경쟁하듯 열심히 때를 벗기고 사우나에 들어가 오래도록 앉아 있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서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어른들 . 나 역시 어른의 나이가 되어 그들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우리 집에 와서 편안하게 자고 씻고 가시길 목욕탕에 들어서며 기억과 몸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느낌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나 보다 .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구광임씨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는다 . 19 살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말이다 .

20 살이 되어 고향을 떠나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 분유깡통 만드는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으로 화산 고향집에 땅을 사드렸다 . 23 살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고산 화장품 대리점에 취직해 방문판매하는 일을 했다 . 자전거를 타고 화산 골짜기 안 다닌데 없이 3 년을 쏘다녔다 .

“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어떻게 했나 싶어 .. 그때는 비위도 좋았어 . 처녀 시절에 숫기 없기 마련인데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만나는 게 좋았어 . 모르는 집도 막 들어가서 화장품 설명도 하고 , 아낙들한테 화장품을 팔아야 하는데 여자들이 집에 있간이 , 다 밭으로 나가서 일하는 거지 .

밭까지 따라가서 일 도우면서 화장품 팔았지 .” 사람이 좋아 찾아다니는 일을 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갔고 이제 그에게 정겨운 목욕탕과 여관이 있다 . 그곳으로 사람이 모인다 . 고산에 이주민이 늘어나는 것과 현대장의 장기숙박팀이 늘어나는 현상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

“ 우리는 장기 숙박팀이 많아 . 작년까지 동우리치 아파트 공사하는 사람들이 1 년 있었고 수로 공사하는 사람들 , 봄철에는 대파 , 양파 작업하는 사람들 . 와일드푸드축제 , 승마 축제 등 행사 관계자들이 숙박하지 . 한 3 년 동안은 정신없이 바빴지 .

우리 여관이 잘 된다는 것은 고산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해 . 사람 살라고 아파트도 생기도 축제도 하고 그럼 사람이 들어와 살고 . 우리 집에 손님이 많으면 주변 식당에도 손님이 많다 .

슈퍼마켓 , 편의점부터 식당 소개 , 주변에 좋은 먹을거리 볼거리 그런 것들 다 소개해주니까 관광안내를 역할을 하는 거지 .” 주인장 구광임씨가 목욕탕 매표소 앞에서 웃고 있다. 여름에는 여관서 벌고 겨울에는 목욕탕에서 벌어서 산다는 구광임씨 .

솜씨 좋은 남편 ( 소병윤씨 ) 이 더운 여름 내 고생한 목욕탕 수리가 곧 끝나간다 . 목욕탕 언제 여냐고 손님들이 자꾸 카톡을 보낸다고 한다 . 8 월 20 일 다시 시작한다 . 더위가 쉽게 가지 않을듯하니 칠석 날 지나 동네목욕탕 냉탕으로 피서 오십시오 .

현장 사진

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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