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또랑에서 울어대던 금개구리를 기억하기 위해 - 봉동읍 명탄마을 박정애 할머니 이야기 완주군 봉동읍 고천리 명탄마을에는 자연하천이 흐르고 있다 . 동네 어르신들은 이를 독보또랑이라 부른다 .
예전에는 어른도 뛰어넘기 어려운 너비였지만 지금은 경지정리로 폭이 좁아져 논 사이를 자세히 살펴야 찾을 수 있다 . 예전의 마을 사이를 흐르던 거미줄 같던 물길은 시멘트로 덮여 대부분 사라졌지만 독보또랑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
‘2025 년 삼봉 2 지구 건설예정 된 구간 옆으로 수백년간 지역의 식수 및 농업용수로 사용되던 독보또랑이 있습니다 . 이곳에는 멸종위기종 금개구리가 살고 있습니다 .
삼봉 2 지구 건설 시 이 공간을 고려하여 금개구리의 거주지 독보또랑이 보존되고 , 사라지는 마을들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사진문화제에 함께해 주세요 . ’ 10 월 17 일 독보또랑과 자연생태계에 관심있는 이들이 명탄마을 정자에 모여 만들어낸 문화제를 알리기 위한 문구다 .
사라지는 마을들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궁금해졌다 . 이 문화제를 사람들과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우현주 ( 느림 ) 씨를 만나 명탄마을의 옛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르신을 소개해달라 청했다 . 차 한 대도 지나가기 힘든 좁은 마을길을 지나 박정애 (86 세 )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
오후의 꼬순 가을빛이 할머니 마당에 한가득이다 . 그 빛 아래에 고추 , 메주콩도 꼬숩게 말라가고 있다 . 텃밭에는 속이 들어차고 있는 배추와 무도 한가득이다 . 옛집이지만 조금씩 손보며 정갈하게 쓸고 닦았을 할머니의 집은 여전히 꼿꼿하다 . 그 앞에 당당하게 선 박정애할머니가 나를 반긴다 .
18 살에 삼례 장포리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던 새색시는 명탄마을의 큰 어르신이 되었다 . 함께 고생한 시절을 기억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 쓸쓸하던 차에 자꾸 젊은이들이 찾아와 독보또랑이야기 해달라 , 금개구리 이야기 해달라 청하는데도 귀찮지 않다 .
몇 달 전 여름 , 할머니 집 뒤쪽 둥구나무에 파랑새가 찾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는데 카메라 든 젊은이 무리가 찾아와 이것저것 물으니 마을 주민으로서 왠지 뿌듯하셨던 모양이다 . 명탄마을의 기억해설사 정애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갔다 . “ 나 시집왔을 때 저 나무가 작았어 .
이 지팡이만한 것을 끊어다가 여기다 옮겨다 심어놨는데 가상이 논자리다 보니까 거름 때문에 빨리 크더라고 . 이 나무가 우리 마을 당산나무야 . 괴목이야 . 정월 보름날이면 여기서 당산제를 지났어 .
바위를 깨끗이 청소해서 거기다 시루를 해다 놓고 동네 사람들은 죄다 목욕재계하고 싹 나와서 저 앞에서 풍장치고 그랬던 곳이야 . 그때만 해도 동네에 사람 참 많았어 . 여기를 당산이라고 부르고 사람들 풍장 치던 이 논을 바우배미라고 했어 . 일하러 오는 사람들 만나는 장소여 , 여그가 .
자 나를 따라와 . 이제 또랑을 보러 가야지 .” 큰 변화 없이 예전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풍경 덕에 정애 할머니의 기억도 곳곳에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 집안일에 소홀한 남편이 원망스러워 호미질을 하다가 목청껏 울어 젖히던 저그 저 밭 .
코빼기 신에 몇천원을 숨겨두고 언제든 도망가려고 바라봤던 그 마을 길 . 폭폭한 마음에 버스정거장으로 향하던 그 길에 만난 동네 아짐의 목소리 . ‘ 아서 , 삼례댁 . 어서 집에가 . 새끼들 어쩌려고 그래 ’ 사남매 생각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그 길들이 여전하다 .
그 삶과 함께 독보또랑도 여전히 흐른다 . “ 이 또랑이 독보또랑이야 . 동네 어르신들이 그냥 그렇게 부르더라고 . 이 물로 다 농사를 지어먹었지 . 지금보다 넓고 물이 참 좋았어 . 어르신들 말로 이 동네에 쌀 도둑이든 소도둑이든 도둑질을 하려다가 다 놓고 갔디야 .
마을에 어찌나 또랑이 많은가 몇 개를 건너다가 더 이상 못 가고 그 자리에 그냥 놓고 갔다드만 . 그 정도로 거미줄처럼 또랑이 많았어 . 금개구리만 있었간디 . 저그 모종있는데 또랑에서 참게가 얼마나 많은가 , 밤에 버꿈 ( 거품 ) 을 부글부글 내놓으면서 나와 .
길 가상이 다 까맣게 될 정도로 많았어 . 그걸 잡아다가 양념해서 담궈 먹으면 참 맛나 . 민물새우도 엄청 많았어 . 옛날에는 꽁보리밥을 해서 먹었는데 그것은 잘 안 익으니까 세 번은 불을 떼야 밥이 익었거든 . 한 번 불 떼놓는 동안 또랑 나가서 소쿠리로 물질하면 빨간 민물새우가 한가득이야 .
그 놈을 멍석에 널어 말려서 무수 넣고 지져먹으면 참 맛나 . 또 물쑥이라고 들어봤어 ? 논두렁에 4~5 월에 나는데 줄기가 빨게 . 그것을 캐다가 삶아서 말린 놈을 고추장 단지에 박아놔 . 나중에 그것을 꺼내 먹으면 고기보다 맛나 . 요즘 사람은 다 모르는 것들이지 .
풀도 사라지고 참게 , 민물새우도 사라지고 없어 .” 또랑에서 울던 금개구리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 정애 할머니는 남아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젊은 사람들에게 목소리로 전한다 .
자신이 살아 온 마을의 역사와 전통 , 자연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긴 목소리는 마을의 변화를 기록하고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 우리 동네 여자들도 퍽이나 고생을 많이 했어 . 시앙 ( 생강 ) 장사를 많이 하러 다녔지 .
시앙 팔러 광주 , 여수 , 부안 , 논산 , 남원 , 안 당긴데 없이 다녔어 . 여수로 제일 많이 다녔어 . 이 동네 여자들이 그렇게 새끼들 다 가르쳤지 . 나는 세 살 먹은 셋째딸 업고 시앙 팔러 다녔어 . 가을에 날이 춥잖아 . 그렁게로 아기가 설사가 나서 똥치우다 하나도 못 판 날도 있었지 .
박정희 대통령 죽던 날에도 광주에서 시앙 팔던 것이 생각나네 . 그 시절에는 인심이 좋아서 시앙팔다가 해지면 서로 재워주고 그랬어 . 그럼 고맙다고 다음 날 아침에 집주인한테 바가지 가져오라고 해서 거그다 시앙을 한가득 주고 오는 거야 . 봉동생강이 참 귀하고 비쌌어 .
그래서 일부러 생강 얻어먹으려고 서로 재워주려는 집도 있었지 . 그럭저럭 십년 넘게 생강장수 하다보니 한세월 지났네 .” 박정애 할머니의 창고에는 요강 , 엇가리 , 빨래방망이 , 볏짚 썰던 작두 , 똥바가지 같은 옛물건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낡은 살림살이들을 보면 추억들이 생생하게 기억나 매정하게 버릴 수 없다고 한다 . 할머니가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강저울이다 . “ 내가 이 생강저울을 안 버리고 계속 놔둔 이유는 이 놈으로 돈 벌어서 우리 새끼들 가르쳤응게 . 이것을 서울 사는 아들한테 주려고 .
나 죽어도 이 저울을 보면 좋을 것 같아 . 이 물건은 나한테 참 자랑스러운 물건이니까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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