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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2.07.20

반에서 제일 싫어한 여학생이 아내가 될 줄이야!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7.20 16:42 조회 1,0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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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호아에서 온 쭈엔과 하이 7 월의 논은 고요하다 . 한낮의 더위에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하다 .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 사사사 ’. 아무리 작고 순한 바람이라도 여름 한낮의 논에 발을 들이면 소리를 내고야 만다 . 고요한 가운데 들리는 작은 소리들이 마음 깊은 곳에 남는다 .

7 월에 만난 사람의 삶 속에도 한 여름 논 풍경이 깊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자 , 지금부터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의 17 살 무렵 서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우리 모두 오랜만에 17 살이 되어 보는 것이다 .

IMG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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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논 사이로 하얀 가르마 같은 길이 나 있고 그 길 위에 자전거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 이곳은 베트남 중북부 지방의 탄호아 .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는 소년은 마이 반 쭈엔 (87 년생 ). 뒷자리에 타고 있는 소녀는 리티 하이 (87 년생 ).

쭈엔과 하이는 한 동네에서 태어났고 중학생 때부터 쭉 같은 반이다 . 10km 가 넘는 등하교길을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다닌다 . 초록빛 논 사이 길을 달릴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 마이 반 쭈엔은 뜻밖의 말을 전했다 . “ 더워요 . 너무 힘들어요 . 그늘 없어요 .

뒤에 여자 친구 태우고 로맨틱 할 거 같은 거 , 그거 너무 영화에요 . 자전거로 10 키로 넘게 달려야 하는 길이에요 . 추수철에는 도로에서 나락을 말리니까 . 자전거 타고 다니기 힘들어요 . 지금 느낌은 그거 밖에 없어요 . 중학교 때는 서로 싫어했어요 . 서로 너무 안 맞아서 많이 싸웠어요 .

우리 반 40 명 중에서 여자는 15 명 정도 되었는데 그 중에서 이 사람이 ( 지금의 아내 , 리티 하이 ) 제일 마음에 안 들었어요 . 이유는 모르겠어요 . 그런데 고등학교 가면서 같은 반 되었는데 오토바이 타거나 자전거 탈 때 항상 같이 다녔어요 . 제 뒤에 타고 많이 다녔죠 .

사실 고등학교 때 제 마음 조금 움직이긴 했죠 . 그렇게 되었어요 .” 내가 하는 연애보다 남이 하는 연애에 이렇게 두근거려도 되는 것일까 ^^ 고등학교 졸업 후 쭈엔은 북쪽의 하노이 , 하이는 남쪽의 호치민으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오히려 마음은 가까워졌다 .

마이 반 쭈엔은 전문대 2 년 졸업 후 한국행을 결심했다 . 그 당시 베트남 젊은이들 대부분은 한국으로 건너가 취업을 했다 . “ 대학에서 냉동기술 전공했어요 . 2007 년 12 월 20 일 한국으로 들어왔죠 . 그 당시 베트남 대학교에서 한국으로 연수 보내는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

그런데 한국 와서 전문적인 기술 못 배우고 비전문 일 했죠 . 나는 큰 기대는 하고 오지 않았어요 .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좋았죠 . 처음 들어온 곳이 남원이에요 . 그 당시 남원에 호남철망이라는 공장에서 1 년 일했죠 . 그 사장님이 봉동에도 공장 있었어요 .

봉동 덕천하이트아파트 밑에 아이비펜스라고 철망 만드는 회사에요 . 그 곳에서 5 년 동안 일했어요 . 사장님 따라서 완주로 오게 되었죠 . 그 뒤에 봉동 대원기계에서 2013 년에 일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 대원기계사장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

제가 비전문 비자에서 전문비자 그리고 국적 취득하는 데 까지 그 과정을 사장님이 도와주셨어요 . 그 사장님과 인연이 깊죠 .” 사진 아래_ 짜 루어. 베트남 전통 소시지. 베트남에서 소시지 만 드는 기계를 들여왔다. 어머니 비법으로 만들어서 신선한 소시지 를 아시아마켓에 팔 예정이다.

설날에 먹는 찹쌀떡 바인쯩. 지인에게 인수 받은 베트남 식당을 2022 년 4 월부터 운영하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려 했지만 사장님과의 인연 때문에 야간근무 중심으로 일하는 시간을 변경했다 . 쭈엔은 바쁜 점심시간에 아내 하이의 식당일을 돕고 있다 . 그렇게 한국살이 15 년째가 되어간다 .

쭈엔이 취업비자로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하이는 베트남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 2009 년 약혼 후 2012 년 결혼하면서 하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읍사무소에서 5 년 정도 근무 했다 .

첫째 아들 마이 안 부가 태어났고 안 부가 6 살 되던 해 2018 년 한국으로 온 가족이 이주하게 되었다 . 둘째 마이 체리는 2019 년에 태어났다 . 이들 부부에게 식당일은 생소한 일은 아니다 . 마이 반 쭈엔의 부모님은 고향에서 지금도 정육점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

그의 아버지로부터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 그들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름은 꽌 꺼이 보데 . 꽌은 ~ 식당 ,~ 집이라는 뜻이고 꺼이 보데 (cay bo-de) 는 보리수나무다 . 가게 앞에 백년도 넘은 큰 보리수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

위_ 고향친구가 부부가 된 날, 자 전거 타고 함께 다니던 길에서 결혼식 날 행진을 했다. 쭈엔과 하 이는 자동차에 타고 있고 친구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 학교 다닐 때부터 식당일을 도왔어요 . 부모님이 새벽 3~4 시에 일어났어요 . 돼지고기 한 마리를 잡아요 . 그걸 하루에 다 팔아요 .

엄마가 정육점 일하면 아빠랑 나는 식당일 했어요 . 우리 정육점에서 파는 짜 루어 ( 소세지 ) 정말 맛있어요 . 형제는 3 남매였는데 큰 형은 저보다 5 살 많고 다른 지역에서 대학을 다녔고 . 동생은 저보다 7 살 어리고 . 그러니까 중간에 제가 부모님 일을 많이 도왔죠 .

일 년에 4 일만 쉴 수 있었어요 . 설날만 빼고 . 그래서 설날만 기다렸죠 . 설날에는 항상 잔치상을 준비해 놓아요 . 친구들 , 가족들이 오니까 언제든 손님이 오면 대접할 수 있게 . 설날 꼭 먹어야 하는 전통음식 있어요 .

Cha lua 조 루어 또는 짜 루어라고 부르는 바나나 잎에 싼 전통 소세지에요 . 그리고 Bánh chưng 바인쯩 이라고 부르는 찹쌀떡이에요 . 이 두개는 설날에 꼭 있어야 하는 음식이에요 . 베트남 사람들은 집에서 잘 놀아요 .

손님들이 오면 너무 좋아 .” 올해 4 월부터 식당을 시작했으니 아직은 낯설고 고민도 많다 . 특히 하이는 한국에 오자마라 아이 낳고 키우느라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다 . 올해는 한국말 공부하는 것이 목표이다 . “ 한국에서 식당하면 서비스 고민 많이 되요 .

손님 나가면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이 접시를 봐요 . 음식을 남기셨나 , 안 남기셨나 . 긴장 되요 . 많이 남기셨으면 고민이 많이 되죠 .

빈 그릇이 제일 좋아요 .” 막내 동생도 한국 들어와 오산에서 일하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대도시로 떠났는데 쭈엔과 하이 부부는 지금 살고 있는 봉동을 사랑한다 . 경쟁적인 분위기보다는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봉동이 좋다고 한다 .

이들 부부에게 한국 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다 . 건강 , 행운 , 행복 . 그 중에 행복은 베트남 말과도 비슷하다 . ‘ 행 ~ 픅 ’. ‘ 행복 ’ 리티 하이의 베트남 말이 오래도록 귀에 남는다 . 낮고 작은 목소리지만 세심하게 오르내리는 특유의 성조 .

수첩에 적어 둔 그들의 모국어를 따라 읽어 본다 . 어려운 말들이다 . 하지만 거듭 연습해서 적어도 그들의 이름을 완벽하게 불러보고 싶다 . 마이 반 쭈엔 ! 리티 하이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반에서 제일 싫어한 여학생이 아내가 될 줄이야!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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