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금평마을 의 김선희씨 영화를 좋아하니 뜬금없이 영화이야기로 시작을 해야겠다 . 얼마 전에 ‘ 리틀 포레스트 ’ 라는 영화를 봤다 . 일본의 간토 지방과 훗카이도 사이 , 동북지역의 ‘ 코모리 ’ 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젊은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다 .
완주에서 지내며 알게 된 다양한 농사꾼들이 생각나는 영화였다 . 내가 아는 사람들은 주로 귀농해서 사는 소농들이다 . 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사는 모습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닮은 구석이 많다 .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삶 .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
마냥 게으를 수 없는 농촌의 생활 . 토착민들과의 갈등 , 때론 화해도 있고 미움도 생기는 어수선한 날들 . 결국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고 어울려 사는 것이 좋은 방향이지만 이를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나날을 정신수양하며 보내야 할까 . 영화의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나이다 .
“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는 것 . 코모리 ( 일본의 시골마을 ) 에 산다는 것은 그런 일상을 반복한다는 것 . 하지만 우리의 삶은 원이 아니라 나선일지 모른다 .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맴도는 것 같지만 위로 , 아래로 , 옆으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으로 몸부림치고 있다고 ” 스스로를 날라리 농부라고 소개하는 김선희 씨 (60 세 ). 그녀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소농친구들 중 한 명 .
일주일에 두 번은 고산의 카페에 나와 그 동안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수다쟁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 유난히 낭랑한 목소리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눈을 맞추고 ‘ 좋은 하루 되세요 ’ 라고 외치는 그녀 . 그녀의 텃밭이 궁금해졌다 . 과연 날라리 농부가 사는 방식은 어떨까 .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여장부 2012 년부터 봄 . 완주 경천으로 이주 , 그해 겨울부터 화산 금평마을에서 살고 있는 김선희씨 . 완주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로드무비처럼 파란만장하다 . “ 2011 년도에 양재동 아트센터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데 그때 생협 한살림 식생활 강사로 수업하러 갔었지 .
행사장 구경을 하는데 완주 귀농귀촌 부스가 있더라고 . 그때까지 완주가 어디있는지도 몰랐어 . 집으로 돌아와서 완주에 대해 컴퓨터로 찾아봤지 .” 김선희씨는 1996 년부터 2009 년까지 강남에서 피부샵을 오랫동안 운영했다 . 돈 꽤나 있다는 사모님들이 주된 손님이었다 .
잘 되던 피부샵도 놓아두고 홍천으로 향했다 . 지인이 홍천에 펜션을 오픈하는데 매니저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것이다 . 일 년 정도 지나니 펜션도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났는지 무주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
지프차 한 대로 무주까지 가서 펜션 오픈 준비 일을 하다가 완주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차 뒤에 수저 , 젓가락 . 이불 , 밥통 싣고 떠났다고 한다 . 딸과 남편이 있는 가정주부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을 테다 . “ 난 원래 여군이 되고 싶었어 . 남성 기질이 있어 .
그러면서 내면에는 아기자기 한 면도 있긴 하지 . 내가 다른 여자랑 좀 달라 . 촉이 오면 꼭 그곳에 가서 확인사살을 해야 해 .” 강 원도 홍천에서 만난 농사멘토 촉이 발동해서 시작된 홍천으로의 여정 . 그곳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 김선희씨의 농사멘토 이오남 할머니 .
일하던 곳 근처 마을에서 감자농사를 짓던 할머니였다 . 일이 끝난 후에도 할머니 댁에 몇 달 동안 머물며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일을 배웠다고 한다 . “ 이 할머니는 부정이라곤 없었어 . 무조건 긍정이야 . 누가 오면 그렇게 퍼주길 좋아해 .
서울에 살 적에는 내 것을 누군가에게 주면 또 새것을 사야하니까 돈이 나가는 거잖아 . 금전부터 생각하는 거지 . 근데 그 할머니는 평생 농사를 짓다보니까 땅에서 나는 것들은 풍족한거야 . 자기 먹고도 남으니까 그렇게 남을 퍼줘 . 금전적으로는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참 풍족해 보이더라고 .
편안해 보이고 .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지 . 도시 속에서는 문만 열면 다 돈인데 시골에서는 문 열고 나가면 다 먹을 것 천지야 .. 모정 같은데 그냥 앉아 있어도 되고 이쪽 밭을 가면 풍경이 다르고 저쪽 밭에 가면 또 풍경이 다르고 . 자연이 나에게 주는 게 많아 .
근데 난 자연한테 줄게 없으니까 겸허해 지는 거지 .” 날라리 농부여도 농사는 진지하게 김선희씨도 여느 농부들처럼 새벽 5 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 시골생활 4 년차 되니까 지어먹을 밭도 생겼다 .
생강 , 땅콩 , 도라지 , 더덕 , 감자 , 참깨 , 들깨 , 고추 , 수박 , 참외 , 초석잠 , 당귀 , 방풍 , 우엉 , 어성초 , 하수오 , 수세미 , 토마토 , 오이 , 가지 , 상추 등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듯 헌데 , 그녀의 혈기는 젊은이 못지않다 .
농사일 외에도 생협 한 살림 식생활 강사로 활동하며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하고 매주 화요일엔 완주군 중앙도서관에서 북스타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 농사일로 먹고 사는 토착민들에 비하면 자신은 날라리 중에 오리지널 날라리라며 웃어넘기지만 요즘은 농사일에 제법 진지해진다고 한다 .
“ 몰랐을 때는 재미있었지 . 뿌린 씨에서 싹 나고 그런 것 자체가 신기하기만 했지 . 농사를 알고 나니까 일이 버겁고 힘든 거야 . 때 되면 뭐 해줘야 하나 . 순 쳐줘야지 . 줄 매줘야지 .. 근데 계속 해보면 재밌어 . 농사가 꼭 애 낳고 키우는 거랑 똑같아 . 겨울에는 임신기간이야 .
삼월부터 밭 갈고 이 밭 저 밭 돌아다니면서 낳을 자리를 닦아 놓는 거지 . 지금 여름철은 출산 대비해서 돌보는 과정이야 . 가을에 수확 하는 게 아이 낳는 거지 . 근데 난 내 자식도 낳아 놓고 막 키웠거든 .
그래서 내가 씨는 많이 뿌리는데 관리가 서툴러 .” 자신을 서툰 날라리 농부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그녀의 밭엔 다양한 작물들이 정갈하게 자라고 있었다 .
완주의 곳곳에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해서 사는 농부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고 어깨 너머 구경만 하던 내 자신에게도 농사일에 하루 빨리 입문해보라고 닦달해본다 . 새벽부터 시작되는 고단한 농사일을 끝내고 해가 지면 그럭저럭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 깜깜한 여름 밤 .
날라리 농부든 진지한 농부든 이주민이든 토착민이든 되는 대로 모여서 모깃불 피워놓고 한쪽에서는 감자나 옥수수를 삶고 흰 광목천 걸어서 웃기는 영화나 함께 봤으면 좋겠다 . 글.사진=장미경 /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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