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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2.10.24

고산면 복지매장 최기연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10.24 15:46 조회 1,0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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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웠어요, 오래된 가게의 작별인사 고산면 소재지는 화산 , 비봉 , 운주 , 경천 , 동상 등 완주군 북동지역 6 개 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어지간한 가게들은 다 있다 .

방앗간이나 철물점처럼 오래된 가게들도 많고 문을 연지 몇 해 안된 청년들의 작은 책방이나 카페도 제법 많다 . 꽤 오랫동안 옥환상회가 자리했고 몇 년 동안은 은혜슈퍼로 불리다가 지난 25 년 동안은 복지매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장사를 했던 고산의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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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기 전 감사세일을 열고 있는 고산복지매장에서 최기연 (52 세 ) 사장님을 만났다 . “11 월 2 일이 우리가 가게를 운영한지 딱 20 년이 되는 날이에요 . 아기 아빠가 이 가게에 물건 납품하면서 가게 주인과 친해지게 되면서 인수하게 된 거죠 .

복지매장이라는 이름은 바로 전 주인이 지었던 이름이에요 . 이 가게를 거쳐 간 주인이 많아요 . 이 가게 터에서 가장 오래한 가게는 옥환상회에요 . 옥환상회 전에도 가게를 했다고는 하는데 그건 하도 오래 전 이야기라서 기억하시는 분이 없고 제일 이름이 알려진 게 옥환상회죠 .

그 가게가 30 년 정도 운영을 했고 그 다음이 은혜슈퍼가 7 년 했다고 하고 그 다음 복지매장으로 이름을 바꿔서 5 년 하다가 우리가 인수해서 20 년 동안 지키고 있었던 거죠 .” 개미터 가게의 계보 어르신들은 이 가게의 터를 개미터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

부지런히 움직여야 돈을 많이 버는 곳이라는 뜻이다 . 개미터라는 이름대로 이 곳에서 가게를 하신 분들은 다들 일도 많이 하고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한다 . 특히 30 년 넘게 운영되던 옥환상회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았다 . “ 이 자리는 예전부터 가게 자리였던 거 같아요 .

어른들은 개미터라고 부르더라고요 . 부지런히 움직여야 돈을 많이 버는 터래요 . 옥환상회가 장사가 잘 되서 그 주인이 이 자리에 75 년쯤에 새로 지금 건물을 지었다고 해요 . 그 분은 전설이에요 . 그 당시는 은행이 없었으니까 돈을 마대자루에 보관해놓고 아무데나 던져놨데요 .

동전만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곤 했는데 도둑이 들어서 그 동전만 훔쳐갔데요 . 지폐가 마대자루에 담겨져서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나봐요 . 그리고 또 유명한 전설이 5 톤 차에 가득 실려 있는 콜라를 이틀에 한번 꼴로 팔았데요 .

옥환상회가 어느 정도였나 하면 직원을 여러 명 두고 6 개면에 자전거로 물건을 배달하러 다녔다고 그래요 . 작은 구멍가게에 물건 납품을 한 거죠 . 여긴 엄청 큰 도매집이었던 거에요 . 저도 그런 이야기를 메이커를 통해서 들었어요 .

50 년 넘게 일하신 메이커들이 우리 집에 납품하면서 알려 준 이야기들이에요 .” 최기연 사장이 가게를 찾아 온 오랜 단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랜 단골들은 20년 동안 보고 지낸, 서로의 이름만 모를 뿐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이기도 하다.

메이커가 뭐냐고 물었더니 롯데제과 , 해태제과 같은 회사들의 대리점에서 가게에 물건을 납품하는 영업사원들을 일컫는 용어라고 했다 . 사장님의 남편도 가게를 인수할 당시 그 메이커들 ( 생활잡화 ) 중 하나였고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한 전 주인의 제안으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

“ 원래 잘 되는 가게 자리는 친척들한테도 잘 안주거든요 . 전에 있었던 분들도 5~7 년 씩 짧게 하고 넘긴 이유는 장사가 잘 되던 때라 잠깐 해도 많이 벌었었데요 , 우리도 5 년만 하려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죠 .

새벽 6 시에 문을 열고 밤 12 시에 문을 닫던 시절이었어요 . 처음 장사할 때 제가 가게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니까 어머님이 아이들 케어해주시며 살림 도맡아 해주셨고 , 아버님은 물건 진열하는 것을 도와주셨어요 . 가게 뒤에 백년도 넘은 오래된 흙집이 있어요 .

방 하나에 어머니 , 아버지 , 딸 둘 . 한 쪽방에서 우리 부부가 살면서 장사했어요 . 그 뒤로 고산 읍내에 방 구해서 이사 다니면서 살았고 , 지금은 고산 성당 올라가는 길에 여관건물을 경매로 받아서 거기서 살아요 . 그래도 15 년간은 장사가 엄청 잘됐어요 .

예전만 못해서 장사를 그만두려는 건 사실 큰 이유가 아니에요 .” 20 년 동안 감사했어요 수고했어요 20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 10 년 전만 해도 그렇게 잘되던 대형 유통매장도 지금은 쉽지 않다고 한다 .

온라인 쇼핑과 프랜차이즈 편의점들이 오래된 가게들을 조금씩 대신해가고 있는 지금 시대에 소재지 한복판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 하지만 서른둘에 시작해 20 년 동안 청춘을 바친 이 곳을 정리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

“ 매출이 떨어져서 그만 두는 것 보다는 뭐랄까 재미가 없어졌어요 . 마음이 떠난 것도 있고 오래 하기도 했죠 . 그래도 많이 고마워요 . 여기서 아이들 다 키웠으니까요 .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나 미련도 없어요 . 그만 두는 것이 신나요 .

저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장사 접자고 했는데 신랑과 합의를 본 게 6 개월 전이었어요 . 신랑은 그래도 20 년을 채우고 가게를 정리하고 싶었나 봐요 . 그 6 개월이 인생에서 참 긴 세월이었던 거 같아요 .

젊었을 때는 세월의 속도가 빨리 간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6 개월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 마음으로는 단골손님들에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어요 . 사실 장사 접기로 마음먹었으면 이 물건들 반품처리하고 바로 닫아도 되거든요 .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열어놓고 작별인사도 드리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감사세일 통해서 물건 싸게 드리고 싶고 그래요 .” 계산대에서 마주보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오래된 단골손님들이 드나든다 . 20 년 동안 보고 지낸 사이지만 서로의 이름은 모른다 .

이름만 모를 뿐이지 많은 것을 귀담아 듣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관계다 . 경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들른 손님은 계산이 끝났는데도 한참 가게를 서성인다 . 노인이 되어가는 손님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사장이 나누는 대화가 한 편의 시 같다 . “ 참 서글프네 , 문 닫는다니 .

자네도 여기서 청춘을 다 보냈네 .” “ 그러게요 . 벌써 청춘이 가버렸어요 .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요 .” 새롭게 문을 여는 가게들은 그간 많이 소개되어 왔지만 이렇게 멋진 퇴장을 준비한 최기연 사장의 20 년 정리세일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

동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세월이다 . 올해 말까지 문이 열려있으니 더 늦기 전에 수시로 드나드시길 .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어준 가게에게 갈채를 보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최기연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시길 !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고산면 복지매장 최기연 이야기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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