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에 고며든 맑눈광 선생님 이야기 - 고산고등학교 오세강 선생님 그동안 내가 만난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 생애 첫 선생님이었던 초등학교 1 학년 때 선생님 얼굴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
유난히 무서웠던 선생님의 얼굴도 어렴풋이 떠오르고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난 교생선생님을 떠나보낼 때 015B 의 ‘ 이젠 안녕 ’ 을 함께 부르며 통곡하는 아이들을 따라 억지 눈물을 흘렸던 것도 생각난다 .
공부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늘 선생님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던 아이였는데 지금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선생님의 얼굴이 있다 . 그때는 숙제 검사받듯 일기를 검사받던 시절이었다 . 다른 선생님들은 ‘ 참 잘했어요 ’ 라는 도장을 찍어주시곤 했는데 그 선생님은 늘 일기에 댓글을 달아 주셨다 .
선생님 앞에서는 부끄러워 눈도 못 맞추면서 일기장으로 주고받는 그 짧은 댓글들이 재미있어서 때로는 ‘ 시험문제를 쉽게 내주세요 ’, ‘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애들이 약한 애를 괴롭히지 않게 해주세요 ’ 같은 일기를 가장한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
그 선생님은 삐뚤빼뚤 써 내려간 어린아이의 시시콜콜한 하루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손톱만큼 작은 글씨에 마음을 담는 분이셨다 . 지금도 잊을 수 없는 ‘ 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 ’ 는 그 한 줄의 댓글은 어쩌면 글을 쓰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최초의 빛나는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
선생님의 존재는 그러하다 . “ 처음부터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못했어요 . 친구들이랑 게임하고 야자 튀고 놀기만 했어요 .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중요했어요 .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사범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제가 고등학교 때 한자 자격증이 있었어요 . 원래 이과였는데 한자 자격증으로 한문교육과로 진학하게 됐죠 . 사범대 한문교육과에 진학하고 나서도 그냥 열심히 놀았어요 . 동기 중에서도 술을 제일 잘 마셨고 많이 마셨죠 . 학생회 활동하면서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고 사람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
저한테는 그게 공부였던 것 같아요 .” 고산고등학교 오세강 선생님은 30 대 중반의 8 년 차 교사다 . 어렸을 때는 인사성은 밝았지만 장난이 심했고 , 공부는 못했지만 한자를 좋아했고 , 사범대에서는 교사 시험 준비보다는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한 덕에 7 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
대학시절 방학 때가 되면 순창 쌍치에 있는 훈몽재에서 좋은 선생님 밑에서 한문공부를 하며 세상과 삶에 대한 이치를 배웠다 . 그렇게 흠 없이 착하고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 “ 군산 금강중학교에 발령받아서 처음 교사생활을 했어요 .
교사 일이년 차 때는 좋은 교사가 되려고 하는 가면을 썼던 거 같아요 . 좋은 교사는 ‘ 이래야 해 ’ 라는 가면을 썼던 거죠 . 좋은 교사는 무조건 아이들을 수용하고 무조건 친절하고 무조건 화내지 않는 교사 , 그런 모습을 이상적인 교사라고 생각했고 성직자로서의 교사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
그게 언제 깨졌냐면 아이들과 밀접하게 만나면서 아이들이 금방 알더라고요 . 그것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 매년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받아요 . 물론 저를 좋게 이야기해주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 충격적인 네 글자가 쓰여 있었어요 . ‘ 화좀내라 ’.
어떤 친구는 ‘ 가식적이다 .’ 그러니까 제 마음은 천사같은 교사가 될 거야 라고 생각은 했지만 제 표정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 아이들은 못 속여요 . 진짜 잘 알아요 . 이 사람의 마음이 진짜 무엇인지 .
그때 충격이었죠 .” 감정을 숨기고 무조건 착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 주변의 선배 선생님들 덕에 초임시절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 “ 진솔하게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
화가 난다면 화를 잘 내는 방법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 싸우는 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거든요 . 아이들에게 잘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해요 .” 선생님은 그렇게 군산에서 6 년 동안의 초임 교사생활을 마치고 2023 년 3 월 고산고등학교로 오게 됐다 .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온통 마음을 써주고 대안교육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잘 크는 그런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고 그 마음과 생각의 끝에는 작은 시골마을의 고산고등학교가 있었다 .
“ 저는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산고에 와서는 회의가 정말 많아요 . 회의를 정말 많이 합니다 . 군대로 치면 최전방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장경덕 교장 선생님께서 2019 년 겨울쯤에 고산고에 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죠 .
그때 이미 군산 청소년 자치배움터에 발령이 나기로 결정이 되어있어서 못 갔지만 , 그 뒤로 계속 고산고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봤는데 이렇게 오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 고산고와 고산 지역 공동체 , 마을이 서로 연계된 것도 알고 있었고요 . 저는 고산고가 교육계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요 .
저에게 고산고는 소중한 학교 공동체죠 . 주변 분들이 가끔 고산고는 어떠냐고 물어보시면 ‘ 모든 학교가 고산고가 되어야 합니다 ’ 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합니다 .” 아직 젊은 오세강 선생님은 나이가 들면 어떤 선생님이 되어 있을까를 늘 생각한다고 한다 .
지금은 아이들이 맑눈광 ( 맑은 눈의 광인 ), 양파쿵야 ( 넷마블 캐릭터 ) 라고 부르며 많이 좋아해 주고 함께 잘 노는데 내가 과연 오륙십대가 되어서도 아이들이랑 잘 지낼 수 있을까를 하루에도 두세 번은 생각한다고 했다 .
그런 고민 속에서 ‘ 진짜 내가 솔직하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때 가장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 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 “ 얼마 전에 아이들이 저를 맑눈광 , 양파쿵야 라고 불러요 . 웃으면서 팩폭한다고요 . 화내거나 혼내지 않았는데 혼나는 느낌이 든다며 붙여준 별명입니다 .
고산고의 엄청난 강점이 뭐냐면 , 2 년 전에 저 포함해서 여섯 명의 선생님이 발령났었는데 저 빼고 다른 분은 고산고를 모르고 오셨는데 기존에 계셨던 고산고 선생님들의 환대와 함께 하는 문화에 금방 젖어들게 되더라고요 . 한번 들어오면 못나가는 것 . ‘ 고며든다 ’ 는 말이 있어요 .
얼마 전에 새로 오신 선생님 두 분도 그렇게 고산고에 스며들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 내가 만난 오세강 선생님은 광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맑은 눈을 가졌다 . 그 맑은 눈으로 앞으로 펼쳐질 교사생활 내내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과 가치 있는 삶을 가르쳐 주실 거다 .
‘ 맑눈광 ’ 이라는 그의 별명 때문일까 . 늘 마음에 새기는 사자성어 또한 ‘ 불광불급 不狂不及 ’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 도달하지 ) 못한다는 말을 늘 생각합니다 . 선생으로만 잘하는 것보다 우선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없겠더라고요 .
선생 따로 저 따로 인 채는 살 수 없을 거 같아요 . 이 교육공동체 안에서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 / 글·사진=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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