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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자마자 싸리문을 여는 이유 2022-06-23

눈 뜨자마자 싸리문을 여는 이유

율소리 봉림(새터)마을 송성례 할머니

 

송성례 할머니는 아흔 다섯 해를 살아왔고 오늘도 눈만 뜨면 여전히 밭에 나가신다. 대문 밖을 나서면 양 옆으로 할머니의 밭이 있다. 이곳은 말하자면 할머니의 직장이다. 1947년 정월달, 스무 살 되던 해에 시집와서 여태껏 살고 있으니 75년 동안 매일 밭으로 출근중이다. 할머니의 오남매는 어머니가 밭일 놓고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겠지만 일 못하면 오히려 병난다며 새들보다 일찍 밭에 나가신다.

 

지금도 여전히 밭에 나가니까 건강한 거야. 애들은 못하게 하는데.. 밭에 못 나가면 내가 죽어. 일 안한다고 좋은 게 아니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여야 해.”

 

지금은 밥하기 싫으면 빵 사먹고 고기 사다먹는 세상이라지만 할머니 젊은 시절은 어찌 그러했을까. 오로지 땅에 붙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대식구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여러 해 쌓인 세월이 흐릿하지만 이상하게 오래 전 기억은 또렷하다. 일본군들이 총칼을 들이대며 집집마다 숨겨놓은 나락을 빼앗아 가던 기억, 용진면 지서가 있던 큰 동네에서 인력거 타고 초포다리 건너와 가마타고 고불고불 마을길로 들어오던 새색시의 마음. 처음 봤던 새신랑이 마음에 들어 좋았던 기억. 그 기억들이 할머니의 표정과 언어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다급한 시대를 살았어. 인공 때, 하늘서 비행기가 막 떠다니면 집을 짓다가 숨어. 또 비행기가 지나가면 나와서 집 짓고 그렇게 이 집을 지은 거야. 시집 왔을 때는 초가집이었어, 나락 농사지은 지푸라기를 엮어서 지붕을 얹었지. 일 년만 되면 짚이 썩어서 하늘에서 물 떨어지고 그랬어. 그걸 이승만 대통령 때 쓰레이트로 싹 바꿨지. 이 집이 참 오래 묵은 집이여. 내 집이 좋아. 나는 여기로 시집와서 여기서 죽어나가고 싶어.”

 

자신의 인생을 농사만 짓고 살았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지만 농사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씨 뿌리고 정성껏 키우고 거둬들이고 갈무리한 농산물을 장에 나가 직접 팔기도 했으니 말이다.



    


 

위부터_ 할머니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마당을 지나 싸리문을 열어 놓는다. 한평생 고마웠던 학독. 동네사람들이 함께 사용했다. 인절미도 만들어 먹고 고추 갈아서 여름김치 담가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여전히 사용 중인 아궁이 재를 걷어낼 때 쓰는 당그래.


전주장, 봉동장, 고산장, 안 나가는데 없이 다 나갔어. 대파를 많이 팔았어. 할아버지가 지게에 싣고 신작로 정류장까지 가서 버스에다 실어다 주면 나는 남부시장에서 팔고 다시 시내버스 타고 들어왔지. 대파도 물건이 좋아야 남보다 하나라도 더 팔아. 맵시나게 다발 묶어서 보기 좋게 팔아야지. 나도 고생 많이 했어. 그런데 그런 거는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어. 내 생활이 그것 잉게. 그걸로 먹고 살고 새끼들 다 가르치고 했응게. 농사짓고 사는 사람 중에 이런 고생 안하는 사람있간이. 우리들 젊었을 때 그러고 다녔어. 그래도 그때가 좋은 때였던 게벼. 배는 고팠어도 그때가 좋았어.”

 

무엇이든 갈급하던 시절이었다. 밭에 나가서 뜯어온 상추위에 보리밥에 된장, 고추장 슥슥 묻혀 얹어 입에 한 가득 먹으면 왜 이리 맛있던지, 할머니는 별 것도 아닌 그 맛을 지긋지긋하게 맛난 맛이라고 표현했다. 지긋지긋하게 맛난 맛은 지금은 찾을 수 없는 맛이다.

 

논농사가 제일 힘들었어. 소가 땅 갈고 사람이 들어가서 못자리 봐가면서 모 심고. 다 사람이 했지. 낫으로 베고. 나락 마르면 홀테로 훑고. 지금 논농사는 기계가 하니까 편하지. 내가 손이 작아서 부지런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 동네 사람들이 아이고 저 손 쪼깨 봐, 참 부지런하다 그랬지. 나는 원래 앉아있지 못해. 깝깝해서 못 앉아 있어. 그러니까 저 구렁배미 들녘까지 다 모심으러 다녔지. 밤낮없이. 재밌어. 젊은 동네 사람들이 술 한 잔씩 하면서 모 심으면 왜 그렇게 재밌어. 샛거리 먹고 일하고 또 쉰다고 먹으면서 놀면 왜 그렇게 재밌어. 그때는 노래도 많이 했어.”

 

그때 불렀던 노래 좀 해달라고 떼를 썼는데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려는 듯이. 고요한 노래가 시작되더니 잠시 흐르던 정적은 사라졌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깊이 스며드는데... 잊어버려서 잘 하덜 못혀. 또 무슨 노래를 좋아했냐면.. 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못 잊게 하네.”

 

목포의 눈물과 울어라 기타줄. 나는 이제 이 노래를 잊지 못할 것 같다. 가늘고 떨리는 음색이지만 섬세하게 넘나드는 노랫가락이 그날의 논배미를 넘나드는 듯 했다. 작지만 일을 겁내지 않는 할머니의 몸은 땅과 가까이 있을 때 살아난다.

할머니의 오래된 집 구석구석에는 곧 땅으로 돌아갈 씨들이 볕에 잘 마르고 있다.

 

대파씨, 쪽파, 아욱씨, 상추씨, 시금치씨, 무씨, 쑥갓씨. 온갖 씨들이 나 시집 올 때 농사지을 때 받아 놓은 씨를 지금까지 이어오는 거야. 씨앗들 보면 기특해. 내 재산이야. 시골 살려면 다 받아서 농사지어야 해. 시부모님 시누들 큰 형님들로부터 물려받은 씨들.. 그 전의 어른들로부터 내려온 씨니까. 이 씨가 나보다 더 할머니야. 되먹고 되먹고 받아놓았다가 먹는 거야. 몇 천년이나 되었나 몰라. 우리들이 평생 먹고 살아야 하니 없어지면 안 되는 거야.”





위부터_ 할머니의 남편 故오종영 할아버지는 살아생전 다정하신 분이었다. 할머니가 밥할 때 편하라고 오남매 업어 보살폈다. 상추씨 받기 전 볕에 말리고 있다. 건조 중인 아욱씨 옆에 씨 털어낼 때 쓰는 작대기와 빗자루도 오랜 세월을 함께 했다.


고학력을 갖춘 이들이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더 합리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시골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깨우치게 한다. 송성례 할머니는 학교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밭에서 인생의 이치를 깨달았다. 가을 추수할 적에는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이 한 줌이더라도 세상 제일가는 부자가 된 듯하고 봄에 새싹 돋는 것을 볼 때면 사람 인생이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작고 오그라 들었던 것이 너슬너슬 잎을 펴고 커가는 것. 사람도 죽었다 다시 태어나고 힘든 일이 있다가도 인생이 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봄에 돋아나는 새싹을 보면 사람과 같다. 그렇게 일 년이 금방가고 세월도 가는 것이다.

 

내가 눈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싸리문 열어놓는 거.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니까. 싸리문 늦게 열면 사람들이 나 죽을 줄 아니까 매일 눈뜨면 하는 일이 싸리문 열어놓는 거야.”

 

초록색 철문이건만 할머니는 여전히 그 문을 싸리문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오늘도 제일 먼저 싸리문을 열고 밭으로 출근하실 테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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