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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배병우 어르신 2022-04-20

[비봉 소농리 원소농마을] 배병우 어르신

대대로 이어진 고향 사랑


마을 중심부에 자리한 넓은 주택. 울타리에 꽂힌 색색의 바람개비가 불어오는 바람결을 타고 경쾌하게 움직였다. 이곳은 경로회관과 모정, 버스정류장과 가까워서 항상 집 앞으로 어디론가 오가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근처 텃밭에선 배병우(70) 어르신이 삽을 들고 울퉁불퉁한 흙과 돌을 퍼내고 계셨다. 곧 있을 주차장 공사를 위해 미리 땅을 고르는 것이었다.

 

원소농마을 토박이인 병우 어르신은 대대로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땅에서 작물을 일궈왔다. 곧 주차장이 될 이 텃밭도 그중 하나다. “요즘에는 이웃집을 가더라도 차를 타고 가잖아요.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차가 있어야 이동이 편할 테고. 그런데 우리 마을은 길이 좁아서 명절날 두어 가족만 모여도 불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모두의 편의를 위해 이 땅을 주차 공간으로 내어주기로 했어요. 가끔 스트레칭을 할 수 있도록 운동 기구 놓을 공간으로도 활용되면 좋겠습니다.”


그의 조부인 배영일 어르신 또한 마을의 대의를 위해 앞장섰던 선각자로 알려져 있다. 1929년 일제강점기 당시 그의 조부는 조경환 전 면장, 조동환, 류연흥, 류준상 등과 함께 근대교육을 위하여 비봉초등학교의 전신인 월봉학교를 설립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우리말과 역사교육을 했는데 그것이 일본인들에게 덜미로 잡혀 폐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현재의 자리로 건물을 옮기며 비봉공립보통학교로 명칭을 변경하여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소농리가 아닌 백도리에 학교를 지으려고 땅을 다듬었다고 해요. 그러다 조부께서 손주들이 재 넘어 먼 길을 지나 등교하는 것이 마음에 쓰인다고 하시며 현재 터에 학교를 짓도록 땅을 기부하신 거예요.”


그렇게 학교가 지어진 덕에 이후로 마을은 온통 아이들 소리로 북적였다. 아이들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공터에서 모여 사방치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르신은 당시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간은 해 질 녘 마을의 모습이에요. 온통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고 굴뚝마다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면, 먹음직스러운 밥 짓는 냄새가 골목마다 풍겼어요. 제가 고향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할 기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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