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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봉동 무관마을] 서춘식 어르신2022-03-17

[봄이 오는 봉동 무관마을] 서춘식 어르신

서춘식 어르신은 수염을 기르고 자세가 꼿꼿해 마치 선비 같은 풍모를 지녔다. 고택 복원작업으로 작업복을 주로 입고 있지만 외출할 때는 한복을 차려입고 나간다.


선조의 숭고한 정신 따라 돌아온 고향


무관마을 표지석을 지나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향하니 관음부락에 닿았다. 제내리 제일오투그란데 아파트와 맞닿은 이곳에는 주민들이 약 여섯 가구 정도 거주하고 있다. 아담한 마을을 거닐다 보면 멀리서도 돋보이는 집이 하나 있다. 집 앞에는 느티나무 고목으로 만든 정자가 서 있고 죽포고택이라 적힌 금석문이 반기는 곳이다. 이곳에 사는 화곡(빛날 화 굴 곡) 서춘식(78) 어르신은 조부께서 살던 터를 복원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20여 년 전 고향으로 왔다. 어르신은 우리 조부께서 마을에 서당을 차려서 제자들에게 효 사상이나 국가원리를 가르치셨다. 나라에서는 이러한 공을 인정해주지 않으니 자손으로서 유적비를 직접 만들어 세웠다고 말했다.


제내리 아랫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만든 정자 휴목정.

 

일상에 깃든 섬김의 태도

과거 무관마을 관음부락에는 관음사라는 큰 규모의 사찰이 하나 있었다. 이는 불에 타서 소실되었지만 관음이라는 마을 이름은 이 사찰에서 유래한 것이다. 당시 화마에서 살아남은 건물 한 채를 서춘식 어르신의 조부께서 옮겨왔고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그 터에서 어르신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금 봐도 어디가 공부방이고 어디가 사랑방이었는지 다 기억이 난다. 젊었을 때 타지에 나갔는데 남들에게 이곳을 내줬더니 집이 삭아서 고치기로 결심했다이곳을 모선정원이라 이름 붙였다. 선형을 사모하는 정원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고택을 혼자서 수리했을 뿐 아니라 입구에 있는 정자와 비석들을 손수 만들었다. 정자, 비석 또한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정자 휴목정은 제내리 아랫마을에 있던 느티나무 고목으로 만들어졌다. 바닥이며 지붕이며 모두 나무로 되어 있어 자연친화적이다. 이곳은 날 좋은 날에 문인들이 쉬어가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또 꽃잔디가 피는 계절에는 비석 주변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조경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위부터_정원 입구의 멋들어진 돌작품, 휴목정 내부, 서춘식 어르신의 서예작품과 작업공간


시골에서 살아가기

서춘식 어르신은 수염을 기르고 자세가 꼿꼿해 마치 옛 선비 같다. 그는 집 안에서는 고택 복원작업으로 작업복을 주로 입고 있지만 외출할 때는 한복을 차려입고 나간다. 하루가 다르게 서구화, 문명화되는 사회 속에서 옛것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신조는 그의 조부 죽포(대나무 죽 밭 포) 서창선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는 왜정 때 일본인들이 삭발령 내렸을 때도 조부께서는 갓 쓰고 상투 쓰고 버티셨던 분이다. 마을 이장도 하시고 아무도 못 건드렸을 정도로 근엄하셨다고 말했다.


어르신은 과거 전주에서 서예를 지도하며 제자들을 양성하는 일을 했고 현재 한시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등 학문에 조예가 깊다. 돌에 문자를 새기는 석각 작업이나 토목에도 능하다. 그럼에도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늘 겸손한 자세로 살아간다.


어르신은 시골서 농사짓고 조상 일 받드는 촌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줏대 있게 행동하고 아랫사람 존중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곡식은 내가 보낸 성의를 그대로 보답하고 피, 땀 흘린 만큼 수확할 수 있어서 농사짓는 게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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