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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리 율곡마을] 휘돌아 동네 한 바퀴2022-02-03

[신교리 율곡마을] 휘돌아 동네 한 바퀴



오랜만에 동네가 시끌벅적 “올핸 자주 만나요”


휘돌아 동네 한 바퀴
2022년 임인년 검은 호랑이 해, 새해의 첫 시작에서 소양면 신교리의 율곡마을을 찾았다. 모두가 겨울나기에 한창인지 마을은 인기척도 없이 고요하고 한적했다. 경로당 앞에서 마주한 어르신께 마을이 왜 이렇게 조용한지 묻자 “여럿이 모여 산책하러 갔다. 마침 나도 따라갈 참이다”고 말하며 수레에 몸을 지지한 채 유유히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갔다. 종종 율곡마을에선 도로변에서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언뜻 목적지가 있어서 바삐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운동하는 것이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걷고 또 걷는 사람들. 추운 날에도 차 도로변을 거닐며 담소 나누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정겹다.


터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율곡마을은 몇 년 전까지 그린벨트(green belt)로 개발이 제한되어 인적 드문 외골짜기였다. 그러다 그린벨트가 해제되면서 도로가 새로 개통됐고 마을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빈 땅에 집들이 생겨나고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요한 마을이 마당 쓰는 소리, 웃음소리, 밥 짓는 소리로 채워지고 사람들의 온기로 덥히기 시작했다.



위부터_삼삼오오문화마실 공연을 즐기는마을 어르신들. 열아홉에 마을로 시집온 김진례 어르신, 장작을 패고 있는 차세근 씨, 마실나갈 준비를 하는 조동례·임병운 어르신 부부, 결혼하고 고향집에 정착한 윤아름 씨는 집마당에 텐트를 치고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유평희(85) 노인회장은 “2013년도쯤 그린벨트가 해제되었다. 그 뒤로 도로도 나고 교통이 편해지니까 사람들이 많이들 왔다. 이곳에 축사도 하나 없고 깨끗한 청정지역이라 특히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을 찾은 첫날, 골목 깊숙이 들어서니 초록색 대문이 달린 구옥과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작은 강아지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 집에는 사는 김진례(76) 어르신은 “열아홉 살에 여기로 시집와서 마을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이 57년의 세월을 보냈다. 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마을은 크게 변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오고 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어르신은 목수였던 남편과 함께 네 남매를 키웠다. 논밭이 많지 않아 품삯을 받고 다른 밭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요즘은 연속극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는 어르신은 코로나19 이전을 떠올리며 적적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예전에는 응암마을, 신교마을이랑 합쳐서 관광도 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전혀 할 수 없다. 계속 집에 있어야 하다 보니 전기 요금도 만만치 않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햇볕은 따스하고 콧등은 시린 날씨였다. 경로당 맞은편 위치한 담장 낮은 붉은 벽돌집은 마당에 커다란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 집주인 윤아름(32) 씨는 중학교 졸업 때까지 이곳에 살았는데 이후 전주에서 지내다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름 씨는 “가족들이 전주로 나가 살면서 이 집이 비어있었는데 2016년에 결혼하고 남편과 여기서 살고 있다. 잠깐 머물려고 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시내보다 더 한적하고 편안하다”며 “이 집에 살면 여름에는 잡초를 뽑고 가을에는 낙엽을 치우고 겨울에는 눈을 쓸어야 한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계절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1월 11일 오후, 낮인데도 뺨을 스치는 찬바람이 맵다. 마을앞 큰 길갓집 마당에서 농기계를 살펴보는 유영춘 씨를 만났다. 이 추운 날씨에 관리기가 왜 필요할지 궁금했다. “외국인 근로자들하고 일을 좀 해요. 요새 일이 없잖아요. 일 없이 지내면 수입도 없을 것 같아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밭갈이 하려고 기계를 손보고 있어요.”


마을길 따라 걷다 어르신 부부와 마주했다. 조동녀(83) 할머니가 마실을 나가는 임병운(87) 할아버지를 배웅하고 계셨다. 두 사람은 “풍신나게 뭔 기념사진을 찍는담”이라며 웃었다.
하늘로 길게 솟은 양철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당에 차세근 씨가 장작패는 소리가 퍼졌다. 세근 씨는 농사도 짓고 건축 일도 했었다. 그는 “이 마을에서 슬라브집을 가장 먼저 지었다. 몇 년 동안 몸이 안 좋아서 관리를 못해서 집이고 정원이고 손볼 곳이 많다”고 말했다.


국악 울려 퍼진 마을회관
지난 1월 2일 오후 다섯 시 경, 율곡마을회관. 그동안 문을 걸어 잠갔던 회관에는 오랜만에 온기가 가득했다. 이날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삼삼오오 문화마실’ 사업의 일환으로 국악 공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행사는 완주군 4단계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절차를 거쳐 20인 이내로 모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문화를 즐기지 못 했던 이들을 위해 문화이장 양희원(47) 씨가 센터와 연계해서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희원 씨는 “공연은 보고 싶어도 시내로 못 나가니까 이렇게 공연단을 초대했다. 새해를 맞이해서 모두들 복된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행사를 시작했다. 한편 공연 전 풍경은 사뭇 색달랐다. 완주군 관계자들이 어르신들의 접종증명서를 하나씩 확인하고서야 어르신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어렵게 모인 자리인 만큼이나 마을 어르신들은 기대어린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렸고 곧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공연단이 등장했다. 전통민요 ‘금강산타령’, ‘메아리’로 시작해서 시나위, 대금 독주 등 흥겹고 구슬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리에 앉은 마을주민들은 어깨춤을 들썩였다. 곳곳에서 “얼씨구, 좋다” 소리가 퍼졌고 ‘진도아리랑’으로 공연이 마무리됐다.

민속악회 ‘맴돌’의 유희원(31) 씨는 “요즘에는 퓨전음악을 많이 하는데 우리는 전통민요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 공연이 많이 없었는데 새해가 밝자마자 이렇게 어르신들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좋았다”고 공연 소감을 밝혔다.

공연을 마친 뒤, 윤막동 개발위원장은 “오늘 공연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 2022년 새해에는 이렇게 마을 행사도 늘어나서 하나 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본 최인자(80) 어르신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도 제대로 못 만났는데 이렇게 회관에 나와가지고 공연도 보고 좋았다. 원래 민요나 판소리를 좋아해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조동녀(83) 어르신은 “오래간만에 바깥에 나와서 새해를 마을 사람들과 보내서 좋았다”며 웃었다.





민속악회 '맴돌'의 전통민요를 따라부르며 한껏 신이 난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box] 율곡마을은
소양면 신교리에 위치한 율곡마을은 신교마을과 응암마을 사이에 위치한 자연 부락이다. 1850년경 3세대가 거주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 마을에는 43가구, 80여 명이 살고 있다. 마을은 주변에 밤나무가 울창하여 율곡(栗밤율 谷골짜기곡)이라 칭했다. 일설에는 마을 이름이 일곡리(一谷里)였는데 이웃 마을 행단을 보고 이 마을도 율곡 선생의 호를 따서 율곡리(栗谷里)라 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마을 앞으로는 하천 응암천과 율곡천이 흐르며 군산~대구선 26호 국도가 있다. 현재 사용 중인 마을회관은 1991년도에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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