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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16] 농사에 대한 철학적 고민2021-10-13

[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16] 농사에 대한 철학적 고민


농사에 대한 철학적 고민

 

10, 우리집 일월텃밭은 마늘과 양파를 마지막으로 한해 밭 만들기가 마무리된다.

경천면에 들어와 작년 초봄에 밭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풀을 거두고 밭을 만들며 사계절이 흘렀다. 밭을 만드는데만 꼬박 1년이 걸린 것이다. 우리는 밭에 한 고랑이 만들어 지면 거기에 한 작물씩 심어나갔다. 소 밭갈이나 트랙터 없이 곡괭이와 쇠스랑으로만 밭을 갈게 되니 바위만한 돌덩이를 옮기는 일이 허다했다. 애초에 도시를 떠나 시골에 들어온 것은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자립(自立)하기 위함이었기에 밭을 만들며 생긴 몸의 고단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계가 도구를 대체하면서 앞으로는 곡괭이와 쇠스랑뿐만 아니라 낫과 호미같은 농기구를 쓰는 일도 보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농기구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사라진 농기구들이 꽤나 많다. 얼마 전에는 마늘과 양파밭을 만들며 농사란 무엇일까 떠올렸다. 가을볕 아래 허리를 써가며 괭이질을 하다보니 너무 힘들어 한숨이 절로 쉬어졌고 자연스레 농사 중간 휴식을 취하며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것이다.

농사란, 허리를 숙여 땅에게 인사를 하고 허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 일. 번뇌를 잊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백여덟번의 절을 하는 것처럼, 먹고 살기 위해 자연스레 하게 되는 수행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생명과 함께하는 농부님들을 존경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생명과 함께하는 농부님들은 어떤 분들일까? 먹는 것 이전에 음식이 있고, 그 전에 사람과 식물 그리고 에너지가 존재한다. 또 그 이전에는 식물의 씨앗을 담기 위한 넓은 그릇인 대지(大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대지를 죽이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있는 상태에서 농사짓는 분들을 일컬어 농사짓는 수행자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에 기업적 윤리에 벗어나 자연스럽게 농사를 짓는 분들이 더 많아지는 때가 오길 바래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경천면 싱그랭이 마을은 콩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처음에 두부찌개를 먹으러 마을에 들렸다가 아름다운 전경에 반해 정착하게 되었다. 콩은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동북아시아가 원산지이기 때문에 우리 마을이 콩을 키워 두부를 만든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여름엔 푸르른 콩밭이 펼쳐지고, 이 맘때쯤 곡식을 갈무리를 하고나면 미처 다 수확하지 못한 밭으로 새들이 날아와 콩을 쪼아먹곤 한다. 이렇듯 자연스러운 시골의 정취는 이곳을 방문하는 도시인들 뿐만 아니라 귀농 귀촌자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주기 마련이다. 우리 마을, 나아가 완주 너머로 이러한 마을의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기를 바래본다.


/2018년 완주로 귀촌한 신미연은 작은 텃밭을 일구며 제로웨이스트,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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