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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피어나는 용암마을] 가을볕에 마을 여행2021-10-13

[문화가 피어나는 용암마을] 가을볕에 마을 여행


  

양지바른 길을 따라 울긋불긋 깃든 풍경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9월의 끝 무렵. 입추가 지난 지 꽤 됐지만 한낮의 햇빛은 여름만큼이나 따가웠다. 마을 전체가 양지바른 터에 자리하고 있어 유독 볕이 잘 든다는 용진읍 상삼리 용암마을. 뒤편으로 높지 않은 산이 있고, 앞으로는 들과 하천이 어우러져 있다. 이곳에는 모두 122가구 26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도란도란

마을을 찾은 첫째 날, 초입에 다다르자 마중이라도 하듯 길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는 검정색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이름 부르는 소리에 졸졸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정현금(79)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 오전 내 밭에서 캐온 토란 껍질을 까고 계셨다.

삶아서 나물해서 먹고, 남은 것은 전 부쳐 먹으면 맛나. 개는 큰아들이 서울서 데려왔는데 맡길 곳이 없어서 여기에 놓고 갔어. 10년 됐는데 그 뒤로 그냥 같이 살아. 시커먼 게 깜둥이라고 부르고 깜이라고도 불러. 종일 나를 따라다니면서 밭일 가도 쫓아오고 마당에서 일할 땐 곁에 누워서 자.”




이날 오후 역시 산뜻한 바람만이 땀을 식혀주는 무더운 날씨였다. 커다란 버드나무 그늘 아래 용암마을 토박이 3인방 정우찬(73) 어르신과 정왕모(65), 이형근(60) 씨가 모여 앉아있었다. 노랗게 물든 들녘을 바라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참이었다. 이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이니 라디오를 끄고 정왕모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나무가 아마 400년은 더 됐을 거여. 나무 밑이 시원하니까 오후에 나와서 이렇게 땀도 식히고 쉬는 거지. 옛날엔 마을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는데 이제 토박이는 거의 돌아가시고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아.”

정 씨가 옛이야기로 운을 띄우자, 다 같이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아이들끼리 모여 연 날리고 윷놀이하던 것부터 몰래 서리하다 들켜 꾸지람 들었던 일들까지. 당시 옆집 사는 이웃은 남이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정우찬 어르신은 옛날에는 손으로 모심었으니까 서로 품앗이도 하고 같이 지내는 게 자연스러웠어. 마을에 어르신이 생신이면 닭 잡아서 나눠 먹고 누가 돌아가시면 상여 멨지라며 웃었다.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어르신에게 소소한 즐거움이다.

 

옛 과수원 자리에 들어선 주택단지

좁다란 골목길을 차분히 걷다 보면 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들녘과 잘 익은 홍시가 열린 나무, 담벼락에는 울긋불긋 벽화가 물들어 있었다. 한 붓 한 붓 주민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그림이다.



이성구(70) 이장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 한 바퀴 둘러보며 한편에 조성된 주택단지를 가리켰다.

지금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리가 원래 과수원 자리였어요. 복숭아밭, 배밭이었는데 그걸 개발해서 택지로 조성한 거죠. 그러다 보니 동네가 많이 커져서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중입니다.”

7년 전에 전주에서 이사 온 오영경(49) 씨는 집 마당에 다육정원을 조성했고 이번 마을 벽화 작업에 함께 했다. 9월에 열린 행사를 앞두고 밤낮없이 일했지만 당시를 떠올린 그의 입가에 는 미소가 번졌다.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 이곳에 이사 오게 됐는데 전보다 정신적으로도 훨씬 좋아졌어요. 이전에는 아파트라든지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는데 이곳에 오니 동네 주민들이 정답게 챙겨주시고 함께 협동하는 일도 많아서 좋아요.”



마을 중앙 부근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안. 정우식(75), 허완순(74) 어르신은 상추를 따서 박스에 담고 계셨다. 부부의 손길은 분주하면서도 능수능란했다. 우식 어르신은 이곳에서 나고 자라 5대째 마을을 지키고 있고 완순 어르신은 동상면 수만리에서 시집왔다.

젊을 땐 과수원도 하고 벼농사도 했는데 이제 상추만 해. 상추 농사한 지도 벌써 20년은 됐겠네. 둘이서 종일 일하면 15~20박스 정도 나오는 것 같아. 우리는 이 주변 말고 광주에다가 내다 팔고 있어. 거기가 판로가 많거든.”

우식 어르신 앞집에는 정신모(76) 어르신이 산다. 우식 어르신과 같은 동래정씨이고 정왕모 씨의 형이다. 예부터 용암마을에는 정씨가 많이 살았다. 신모 어르신은 젊은 시절 누나에게서 배운 미용 기술로 용암 이용원을 운영했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시작해서 30살 무렵에 가게 문을 닫았어. 원래 누나가 미용했었는데 부산으로 시집가서 내가 그걸 배우고 자격증도 땄지. 옛날에는 보리나 쌀 한 말씩 주고 그걸로 1년 내내 깎아줬어.”



안쪽 깊숙이 오르자 스물여섯에 마을로 시집온 임정옥(78) 어르신이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계셨다. 젊어서 갖은 일을 하신 탓에 허리가 많이 굽어 있었다.

낮에는 밭에가 일하고 때 되면 들어와 밥하고. 애들은 시부모님이 키워주셔서 어떻게 컸는가도 모르겠어. 겨울에는 도랑가서 빨래를 하는데 어찌나 손이 아리던지 조금 지나니까 꼭 남의 손처럼 느낌도 안 나.” 정옥 어르신은 고생스러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시절에는 힘들어도 버티는 방법밖에 없었다며 말이다.

옛날엔 집 한 채에 복작복작하게 살았는데 이제 혼자만 남았어. 나 먹을 치만 텃밭 키우고 적적할 땐 현금 언니네 집에 놀러가지 뭐. 요샌 트로트 듣는 게 재미야.”

 

용암마을은

마을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용용바위암이며 마을 끝자락에 있는 용바위에서 이름을 따왔다. 용바위가 있는 마을 뒷산은 용의 기운을 받은 산이라 하여 용산이라 한다. 옛날에 마을을 지나가던 지관이 용산 끝자락 부분에 둥구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하여 이후 둥구나무를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은 지 몇백 년이 훨씬 넘은 이 나무는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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