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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노래] 10. 세상을 살아가는 법2021-08-11

[사람의 노래] 10. 세상을 살아가는 법


얼마전까지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을 다녔다.

내가 살던 곳 옆으로 땅이 팔렸고, 그 위로 건물이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공격과 성격이 갖다고 생각하던 아버지는 나에게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공사장 앞을 서성이라고 하셨다. 너 혼자 시골에 내려가 그렇게 희희낙낙하는게 말이되냐며 화를 내는 그를 위해 매주 올라가서 그 앞을 바보처럼 서성였다.

그러다 어느날 작은 언쟁이 났고, 나는 때는 이때다싶어, 레미콘과 건물 앞에 비스듬히 차를 대고는 오늘 공사못한다며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큰 소리로 경찰서, 구청에 민원을 넣어 그 사람들의 약점을 건드렸고, 더 소란스러워지라고 동네 통장까지 다 불렀던것 같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대표와 건축소장에게 조심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동시에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마음이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사는거라고 교육받은대로 하는 중이었다.

시집도 안 간 여자가 인부들이 쳐다보는 레미콘 앞에서 차를 세우고 소리를 지르는 꼴이 끔찍했는지 건물주는 결국에 직원들을 버려두고 도망갔고 나는 나중에 원하는 서류와 각서를 받아냈다. 완주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뿌듯해하는 목소리를 들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던 기억이 난다.

 

며칠전 완주에서 첫 차사고가 났다.

오른쪽으로는 벼가 한참 자라는 물 찰랑이는 논이, 왼쪽으로는 지 멋대로 자라난 나무가지들이 내 차를 긁어대는 차가 한대 겨우 지나는 작은 길을 가슴졸이며 가는데 무언가 찌이익 차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차에서 내리니 작은 논길 빨간 스쿠터에 앉아계신 할아버지가 바닥에 떨어진 낡은 쓰레빠를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고 계셨고, 뭐지?하면서 본 내 차는 문짝 두개에 걸친 긴 상처가 패여있었다.

쓰레빠를 주워드리자 하이고, 참 네.난 괜찮아하시며 스쿠터의 조이스틱을 앞으로 밀어 다시 갈 길을 가신다. 그 모습이 마치 도망가시는듯 보이길래 할아버지, 어디가세요?” 하며 나의 빠른 걸음보다도 한참 느린 스쿠터를 쫓아갔다.

어디가긴 어딜가? 우리집에 가지!!”

아니, 어디 사시는데요?”

내가 이마을에 살지, 어디 살긴 뭘 어딜살아!!”

이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흘리며 나에게 화를 내시는 어르신 사는 곳까지 함께 가는 동안, 동네 아는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스쿠터 할아버지 마당에서 부인까지 나오셔서는 큰 소리로 넌 도대체 누구냐? 보험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내 남편 죽을 뻔했다, 사정이 곤란하니 좋게하고 가라 등등 내가 아는 사고 후처리 과정과 거리가 너무나도 먼 전개가 펼쳐졌다.

아무리 나에게 블랙박스가 있어도 스쿠터 할아버지가 어눌한 말투로 소리를 지르시며 드러누우신다면 혹은 다리를 못 움직이겠다며 그자리에 주저 앉으신다면 나는 할 말이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을 걸린 어린 아이처럼 절절매는 마음을 소리 큰 땡깡으로만 표현하고 계셨다.

어르신들 맘 편하시게 상황을 처리하고, 이후로 두번을 더 찾아뵈어 내 마음도 편하게 만들었다. 지저분한 뒷처리는 보험사가 해주기로하고, 어르신들과 나는 그냥 서로를 걱정하는 좋은 얼굴을 짓기로했다.

공업사에 자동차를 맡기고, 일주일동안 타고다니라며 주신 차를 덜덜거리며 집으로 오는 길에 레미컨차를 줄줄이 세우고 오늘 공사 끝났다고 소리를 지르던 나와, 작은 스쿠터를 쫓아가며 할아버지 어디가시냐며 징징거리며 땀흘리는 내가 겹쳐졌다.

화산에서 체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 하루 끝에 아무 노래도 들리지 않고 차분한 마음만 남는다.





/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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