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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오남매와 그녀의 소소한 일상2020-07-10

독수리 오남매와 그녀의 소소한 일상

독수리 오남매와 소소한 일상

-봉동 대영아파트 허희경씨

 

음악줄넘기지도자#요리#홈쿡#운동#독서#자기관리#주부일상#다둥맘#딸둘아들셋맘#위킹맘#독수리오남매맘#소소한일상을 위한 기록

 

허희경씨(44)의 개인 SNS 첫 화면에 적혀 있는 글귀다. 인터뷰 할 때 나의 습관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에 나의 삶을 포개보는 것이다. 희경씨의 일상에 나의 일상을 포개본다. 다섯 아이가 나에게 달려오는 상상을 하다가 눈을 번쩍 뜨고야 만다. 아니, 어떻게 아이 다섯을 낳고 키우셨나요?!

 

코로나라는 사상초유 사태로 아이를 둔 가정을 중심으로 생겨난 코로나 신조어들이 많다. 돌아서면 밥 차려야 한다는 돌밥, 집에서만 생활하느라 살이 확찐자. 힘들고 답답한 현실이었지만 우리는 잘 견뎌 내고 있다. 순차적으로 학교가 개학을 하면서 희경씨도 서서히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3월부터 동네 언니들과 아침 만보걷기를 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던 시기에는 맞벌이하는 이웃의 자녀 두 명까지 함께 돌봄을 하면서 총 일곱 아이들 밥 차려 먹이는 일을 거뜬히 해내기도 했다. 매끼 잘해 먹일 순 없지만 요리 실력이 대단한 희경씨는 고급레스토랑 부럽지 않게 플레이팅한 음식들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린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외식을 자주 할 수 없기도 하지만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은 희경씨는 뭐든지 근사하게 뚝딱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남편 박영복씨가 필름카메라로 찍은 아이들 사진이다.


#각자의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나는 법

충남 장항에서 나고 자란 희경씨 역시 오남매였다. 오빠 넷과 함께 뛰놀고 복작거리며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희경씨의 삶에 좋은 거름이 된 모양이다.

 

원래 아이들 많이 낳고 싶었어요. 요즘 가정이 너무 단촐 하잖아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의지할 형제들이 많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물질적으로 재산을 물려줄 수는 없지만 의지할 형제, 자매들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희경씨는 태어날 때 자기들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 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는다. 처음이 힘들지 혼자 키우는 것보다는 둘 키우는 것이 낫고 다섯이다 보니 자기들끼리 잘 논다고 한다.

 

2005년 남편 박영복(48)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보습학원 강사일로 전주에 왔다가 색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영복씨를 만났다고 한다. 희경씨에게 반해서 자꾸만 찾아오던 영복씨와 그 해를 넘겨 2006년도에 식을 올리게 된다.

 

그 무렵에 친정에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오빠가 사고로 먼저 떠나시고, 아버지가 폐암말기 선고를 받으셔가지고 힘든 시기였죠. 딸이 저 하나 뿐인데 그래도 아버지 가시기 전에 짝이라도 인사시켜드리고 싶어서 서둘러서 결혼을 한 거죠. 저희 신랑이 좋은 사람이에요. 신혼 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저희 신랑이 사위 노릇 톡톡히 했지요. 결혼 하고 나서도 아이가 빨리 들어서질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첫 애가 생겼거든요. 저희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버지가 하늘나라 가시면서 저희에서 선물을 주셨다고.”


 

큰 아이가 만든 문패다.


2007년 첫째 박성해(14)의 탄생을 시작으로 둘째 지환(12), 셋째 해연(10), 넷째 지호(7), 다섯째 지훈(6)까지 봉동 독수리 오남매의 서사가 펼쳐진 것이다.

 

“2년 터울로 셋째까지 낳았을 때 넷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 들어서서 육아용품 정리해서 이웃들 주고 나서야 넷째가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세 살 터울이 된 거죠. 원래 막내도 두 살 터울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제가 만삭 때 무리를 한 거예요. 크리스마스 전에 이웃들에게 선물한다고 케잌이랑 타르트를 몇 십개를 만들었어요. 막내 예정일이 19일이었는데 1227일 새벽에 양수 터져서 갑자기 태어난 거죠. 딸 아들 딸 아들 아들 배합이 참 좋아요. 다들 부러워해요. 각자 맞은 일을 다 해요. 캠핑가도 각자 할 일 하고 어디 여행가도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 하나씩 맞아서 손잡고 다니고.”

 

끼니마다 이렇게 잘 차려놓고 먹는 건 아니지만 희경씨의 요리, 베이킹 플레이팅 실력은 전문가 못지 않다.


희경씨 SNS의 사진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법

아이들이 많다보니까 생활 규칙은 서로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다. 게임은 시간을 정해놓고 하고 각자 숙제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 평일은 저녁 먹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서 마음껏 뛰어논다. 넷째, 다섯째가 태어나면서 완주군 다자녀정책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아이 다섯을 키우다보니 정부의 정책이 실생활에 가깝게 다가오지 않음을 자주 느낀다. 현재 지원금은 한 아이 학원비로 정도로만 쓰일 뿐이다. 실제로 아이를 키우며 필요한 실질적인 정책들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민원 게시판에 올리기도 한다. 요구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다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아이들과도 집안일 분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 공간은 가족 모두를 위한 공간인데 왜 엄마 혼자만 일을 해야 하니, 다 같이 쓰는 공간이니까 다 같이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예전에는 쓰레기도 거의 다 제가 버렸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역할 분담을 했어요. 음식물쓰레기,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는 첫째, 둘째, 셋째가 알아서 버려요.”

 

201610월에 완주군에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음악줄넘기 지도자 양성과정이 있었다. 돌이 안 된 막내 지훈이를 유모차에 태워 데리고 다니면서 과정을 이수하고 2017년도에 경천 가천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음악줄넘기 방과후 교사 일을 하고 있다.

 

직업이 생겨서 삶의 활력이 생겨요. 계속 집에만 있었으면 저도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도 성장하는 계기가 된 거예요. 내면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저희 부부는 물질적인 지원보다는 아이들이 저희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조언자가 되기를 바라요. 언제든지 힘들 때 상담하고 싶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희경씨는 마당 있는 집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이지만 독수리 오남매의 날개가 단단해져서 저 마다 훨훨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분명 혼자가 아닐 테니까 말이다. 마흔 명은 거뜬히 머물 수 있는 너른 마당이 있는 집이어야 할 테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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