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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반겨주는 화원마을]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2019-06-04

[꽃들이 반겨주는 화원마을]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


그림 같은 임금례 할머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청춘이 가버렸어

 

달걀 까주시며 옛이야기 두런두런

내년 봄에 심으려 달래씨 받아놔

 

임금례(83) 할머니가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그 모습이 마치 그림 같다. 집 뒤에는 초록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마당에 깔린 자갈에 햇살이 반사된다. 남편이 살아있을 적 부부가 함께 쌓아올린 흙담이 할머니를 감싸고 있는 풍경. 이 그림 같은 풍경에서 금례 할머니는 60년 넘게 살아왔다.



임금례 할머니가 멀리 보이는 경각산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산과 꽃과 집, 그리고 할머니가 있는 풍경이 마치 그림같다.


시집와서 오두막 살았지. 부수고 새로 지은 놈도 고가(古家)가 되어서 그걸 또 두 번인가 고쳤어. 흙집이라 비 오면 흙이 떨어지고 샜거든. 낡아빠졌지.”

햇볕이 뜨겁다. 모자를 쓰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금례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돼지감자를 우려낸 물 한잔을 주신다. 시원하고 구수하다.

어제 며느리 주려고 계란을 밥통에 삶았거든. 근데 내 정신머리가 왜 그런가, 준단 걸 깜박했어. 이거 먹어봐. 맛나. 소금 안 찍어먹어도 괜찮더라고.”

물과 함께 냉장고에서 꺼내온 삶은 달걀은 할머니의 주된 먹거리다. 혼자 있다 보니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기가 일쑤. 누군가 전기밥솥에 달걀 삶는 걸 알려준 후로 종종 해 드신다.


할머니는 젊을 적 일을 많이 했다. 논농사도 지었고 담배도 키웠고 누에도 치고 복숭아나무도 키웠다. 그래서 일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우리집 영감님도 고생만 하다 가셨어. 6남매를 뒀는디 조금이라도 갈칠라고 뭐라도 했지. 그때는 다 힘들었잖아. 농사 지어봤자 배만 안 굶는 정도였지 돈을 벌었간. 지금은 나이 들어서 일 못혀. 나는 마당에 풀 나면 뽑고, 작은 텃밭에 가끔 나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러고 살지. 심심해도 어쩌겄어. 그래도 여가 고향이라 맴이 편혀.”

마당이 훤히 보이는 집 문턱에 앉아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해주신다. 시집와 일만 했던 지긋지긋한 옛날이지만 그래도 추억이라고, 머리에 물건을 이고 남부시장까지 걸어 다녔던 이야기가 슬며시 흘러나온다.

이쪽(왼쪽)이 고덕산이야. 나 각시 때 마을 동무들이랑 고사리 같은 거 캐서 남부시장 가서 팔고 그랬어. 시장 갈라면 보광재를 넘어야는데 그 경사가 말도 못혀. 10리 걸어가면 (전주)흑석골이 나와. 거기서 또 한참 잊고 가면 종이공장이 하나 나왔거든. 그걸 지나서 공수내다리를 지나면 남부시장이 나왔지. 20리 됐나 싶어. 힘들어도 그땐 어려서 그랬나 집에 올 때 동무들 만나면 웃으면서 왔어.”

모두가 생활이 곤궁했던 시절, 할머니는 놀 틈도 없었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가벼운 발걸음이 노는 것 마냥 좋았을까.



금례 할머니가 직접 심은 작약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청춘이 이렇게 가버렸어. 이젠 놀러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없어. 아프지나 않으면 좋지. 자식들 잘 되고. 자식들이 집에 와도 뭐 해달라는 욕심이 안 생기더라고. 오면 왔느냐, 가면 잘 가거라. 이러고 말지.”

아담한 흙집에서 부부와 6남매가 북적거리며 살던 그 시절도 사라졌다. 이제는 바라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금례 할머니. 마당에는 소쿠리에 달래씨가 있다. 얼마 전 할머니가 씨를 받아온 것들이다. 이 씨앗은 봄이 오면 밭에 뿌려져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올 여름이,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무사히 지나면 할머니의 새로운 봄도 찾아오겠지. 새로운 계절아 왔느냐, 지나간 계절아 잘 가거라 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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