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농촌별곡]2019-03-05

  • 첨부파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목욕탕 다녀오는 길. 차도를 따라 줄지어선 매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다. 거기 봄이 와 있다, 사뿐히.

그런데 뿌옇다. 안개가 자욱하다 싶었는데, 스마트폰 날씨 앱으로 들여다보니 미세먼지 매우나쁨이라 떠 있다. 어제부터 미세먼지 주의보에 비상저감조치 시행을 알리는 안전안내문자가 요란하게 울렸더랬다.

안 그래도 기대를 모았던 북미정상회담이 예상 밖으로 결렬됐다는 소식이 날아든 터다.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이 오늘 날씨를 닮은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온다. 정녕 봄은 아직 멀었는가.

하긴 봄을 만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추운 겨울을 견디고도, 아름다운 계절의 귀환을 시샘하는 자연섭리를 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아직 꽃샘추위라는 고비가 남아 있다.

어쨌거나 봄은 봄이다. 엊그제는 농협에서 마련한 영농교육을 받았다. 주제는 친환경농산물 생산을 이한 바닷물의 농업적 활용’. 기대를 안고 강의를 들었는데, 벼농사에는 그닥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 때 쯤 열리는 영농교육이란 농사철에 접어들었음을 일러주는 통과절차로 여기는 편이라 사실 실망이랄 것도 없다.

집을 나선 김에 논배미 흙을 떠다가 농업기술센터에 냈다. 토양개선을 위한 성분분석이 목적이다. 해마다 되풀이하는 일이지만 분석결과를 활용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동네 이장이 잠깐 보자고 한다. 농업경영체 변경등록 신청서를 작성하고 났더니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나눠주는 퇴비를 실어가란다. 20키로 짜리 10포대를 차에 실어 날라다가 바깥 창고에 쌓았다. 겨우내 빈둥거리다가 간만에 몸을 썼더니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근육이 뻐근해온다.

이래저래 어수선했던 하루, 철이 바뀌었음을 일깨워주는 신호다. 그래도 농사철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쌀 전업농인 나로서는 4월말은 되어야 볍씨를 담그고 논농사를 시작하는 까닭이다. 두 달은 더 지나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새해 들어 문을 연 우리 벼농사두레의 농한기강좌는 이제야 중반을 넘어섰다. 다섯 강좌 가운데 세 강좌가 진행됐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뜨겁다. 강의 때마다 청중들이 꽉꽉 들어차고, 질의와 토론이 이어지는 등 열기도 무척 높은 편이다. 앞으로 두 번(태극권 맛보기-311, 퍼머컬처 농장설계-325) 남았다. 아무튼 농한기강좌가 여적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는 농한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 아닌가.

사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놀고먹던농한기가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크다. 막상 닥치면 꾸역꾸역 해내기는 하지만 드넓은 논배미에 벼농사를 지어내야 한다는 중압감 탓일 게다. 다른 하나는 설렘이다. 날이 풀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들녘은 생명력으로 꿈틀댄다. 그 기운은 새 희망을 일깨우고, 도전의식을 부풀리게 마련이다.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 할 밖에.

그래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일찌감치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보이고, 물오른 가지에 움터오는 새순이 보이고, 부드러운 흙을 비집고 올라오는 여리디 여린 새싹이 보인다.

그래서 봄이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왕물결나방
다음글
[바닥의 걸어서] 걸어서 또 달려서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