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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네모,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2019-01-09

세모, 네모,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



세모, 네모, 동그라미와 함께 사는 정순씨 이야기

-소양면 고향떡방앗간 이정순씨


준서는 정순씨의 둘째 아들이다. 준서를 처음 만난 것은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막 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9월이었다. 가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서 소양중학교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의 제목도 스토리도 아이들과 함께 정했고 아이들이 출연도 하고 촬영도 직접해낸 멋진 작업이었다. 며칠 전 학교 축제 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나를 억압하는 것들아! Beat IT!> 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상영했다. 영상 첫머리에 미끄럼틀 구멍에서 빠져나오며 화면을 가득 메웠던 개구쟁이가 바로 준서다. 준서는 엄마가 하는 떡 방앗간 이야기를 자주 했다. 준서가 들려주는 쇠머리찰떡, 바람떡, 수수팥떡 이야기 덕분에 나는 201812, 그러니까 올해의 마지막 삶의 풍경의 주인공 정순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정순씨의 고향은 이곳 소양이다. 송광사 앞 동네에서 일곱 남매의 여섯 째 딸로 태어나서 자랐다. 어린 시절 기억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한지공장에 얽힌 것들이 많다. 그 당시 소양은 창과 문에 붙이는 창호지, 바닥장판으로 사용하는 한지 등을 생산하는 한지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타지에서 일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정순씨가 다니던 송광초등학교에도 오백명이 넘는 아이들이 북적거렸다고 한다. 학교 끝나면 한지공장으로 와서 일손을 돕던 여섯 째 딸이었다. 그 후 싸고 간편한 나일론 장판과 샷시문들이 등장하면서 한지공장일은 주춤해지고 이정순씨 댁의 가업이자 전통기술이 사라져갔다.

한지공장을 정리하신 정순씨의 아버지는 나무 농장을 시작하셨다. 정순씨는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일을 배웠다. 나무 관리하는 일, 일꾼들 밥해 먹이는 일들을 도왔다.

스무 살 되던 해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먼저 올라가 자리를 잡고 있던 언니들을 따라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선 십년을 살았다고 한다. 멋지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혼자 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수성가해서 자신이 계획한 멋진 삶을 살기에는 현실이 팍팍했다. 드라마 <아들과 딸>의 후남이처럼 열심히 일해서 모은 목돈은 자신보다는 가족에게 보내졌다. 백화점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일을 했다. 몸이 고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에 치이고 상처받은 마음은 빼곡한 도시 어딘가를 헛헛하게 떠다녔다. 서울 생활 내내 고향 산천이 그리웠고 서른이 되던 해에 다시 고향 소양으로 내려와 자연인처럼 살리라 다짐했는데, 인연이란 참 묘하다. 지금 아이들 아빠 윤상기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 아저씨가 지금 쉰 살. 나보다 다섯 살 많아요. 금은방에 뭘 사러갔는데 우리 애들 아빠가 거기 주인이었어요. 그 즈음에 그 사람 자동차가 눈밭에 미끄러져서 차가 없었어요. 나한테 어디까지 태워달라고 그래서 몇 번 태워다주고 그랬는데 그러다가 연애를 했지요. 시골에서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한다니 동네가 떠들썩했지요. 집에서도 별 반대 없었어요. 결혼 안할 줄 알았는데 네가 한다니까 그래 혀라, 그랬지요. 결혼하고 남편이 하던 금은방 하다가 우리 친정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조경업을 물려받아서 저희가 운영했죠. 우리 아버지가 좋은 분이셨어요. 아버지가 맺어둔 좋은 관계들 덕분에 주변 어르신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복을 많이 받은 거죠. 그러다 5년 전 쯤에 조경업계에 위기가 있었어요. 건설업계가 위축되면서 저희도 힘이 들었죠. 별일 다했어요. 그런 건 말해 뭐해. 먹고 살려고 3년 전에 방앗간을 시작했지요. 그래도 아버지한테 배운 조경일은 놓고 싶지 않아서 남편이 소양조경수생산자영농법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정순씨의 방앗간에는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들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서리태와 메주콩을 볶아 가루를 내고 쌀을 빻아 떡을 져내는 바쁜 일상 속에서 준서 같은 개구쟁이를 어떻게 키워내는지 궁금했다.

 

큰 아이 준우는 어디가도 예쁘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예쁘고 얌전한 애가 어디 있냐고. 근데 우리 작은 애 준서는 특이해요. 걔는 팔랑개비 같고 내 뜻대로 안 키워지는 거에요. 근데 부모가 어른이라고 성숙한 건 아니거든요. 우리 작은 애를 키우면서 많이 느꼈어요. 작은 애도 큰 애처럼 키우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얘네는 다른 아이잖아. 큰 애는 점잖아요. 그런데 우리 작은 애는 흥이 많아요. 음악이 나오면 막 춤을 추고. 흥이 있는 거죠. 준서는 준서 대로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우리 준서 덕에 제가 도를 닦았어요.”

고향떡방앗간 전경. 



정순씨는 스스로를 좋은 엄마는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집에서 아이들을 세심하게 돌보지도 못하고 그냥 방목하는 엄마라고. 하지만 정순씨는 나무의 묘목을 키워내며 아이들이 어떻게 커가는 것이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어릴 때는 씨앗으로 발아를 시켜서 풀도 뽑아내고 병충해도 막아준다. 어느 정도 나무가 크면 제 각각 자리를 잡아줘야 한다. 그래서 아이도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본 틀은 잡아준다.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되 기본 틀은 내가 잡아준다. 그 대신 너희는 각자의 개성대로 사는 거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정순씨의 전략이고 철학인 것이다.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전공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이루고 싶은 꿈대로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인데. 완벽하지도 않는데 완벽한 척 하며 살았던 거 같아요. 이런 생각을 아이들을 키우다 느낀 거죠. 아이들은 다 다른 거 같아요. 획일적으로 교육시켜서 모두가 똑같아지라고 학교에 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저마다 개성대로 살아가되 그 시기에 배워야 할 것을 나이에 맞게 배우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준우, 준서, 서현이한테 가끔씩 말해줘요. 너는 세모야, 너는 네모고 너는 동그라미다. 다 모양이 다른 거를 인정하고 살아가자고요.”


 

오랜 단골이 갖고 온 물건을 살펴보는 정순 씨.



갓 볶아나온 검정콩과 생 참깨.



정순씨의 봄, 여름, 가을은 여전히 조경일로 바쁘다. 남편과 함께 나무의 씨앗을 발아시키고, 노지에 뿌려서 묘목을 키워내고 그렇게 일 년 동안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내다 팔 수 있다. 발아, 삽목, 접붙이기 같은 기술은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없는 이 지역 고유의 기술이라고 한다. 그리고 찬바람 부는 늦가을부터 겨울 내내 정순씨는 방앗간 일로 또 바쁘다. 오랜 이웃들이 농사지은 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쌀을 빻아 떡을 쪄내며 어지간한 집 대소사도 이제는 훤하게 꿸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정순씨는 집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스케줄표를 그려놓고 아이들에게 각자의 스케줄을 스스로 적어놓으라고 한다. 세모와 네모, 동그라미처럼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는 삼남매는 그렇게 정순씨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어지간한 소재지마다 있을법한 고향 떡 방앗간이라는 이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2018년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끄트머리에서 고향의 구수한 방앗간에 다녀온 나는 내년의 복을 듬뿍 받아낸 기분이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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