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정의 청년인턴 일기] 1절. 정겨운 우리동네2018-09-03
[정수정의 청년인턴 일기] 1절. 정겨운 우리동네
행정인턴으로 한 달 동안 함께 일하던 예빈이가 떠났다. 좀 심란하다. 12월이 마지막인 나의 청년인턴 생활의 끝도 생각해보게 됐다. 한 달이 이렇게 훌쩍 가는데 네 달도 곧 훌쩍 가겠구나. 남은 네 달 동안, 한 달에 한번 4차례씩 내가 경험한 완주를 노래하려한다. 좋아하는 노래 ‘고향의 봄’을 개사해봤다. 4절 중 바로 그 1절.
‘ 내가 사는 완주는 정겨운 동네
종분 할매 화산 할매
영국이 아저씨
메론 하나로 일동단결 서롤 살피고
그 안에서 사는 내가 참 좋습니다. ‘
내가 사는 동네는 참 정겹다. 잠자고 생활하는 ‘삼례 마천마을’, 근처에 직장이 위치한 ‘고산 읍내’. 발이 닿는 곳마다 정이 넘친다.
삼례 집 앞에는 종분할머니와 금녀할머니가 산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드리다보니 금새 친해졌다. 두 할머니는 집 앞에 놓인 말 모양 의자에 앉아 자주 노신다. 할머니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면 빼꼼히 집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만 할머니들이 궁금한 모양은 아니다. 일주일 동안 휴가를 갔다 와서 오랜만에 종분 할머니를 만났더니
“아이구 왜 이리 오랜만이랴. 어디 간 줄 알았어~” 라고 하신다.
괜히 쑥스럽고 좋았다. 할머니는 가끔 텃밭에서 기르신 고추나 오이를 챙겨주신다. 감사한 마음에 할머니께 자두를 좀 드렸다. 한 번은 매일 앉아 노시는 그 자리에, 할머니 두 분 외에 다른 얼굴들이 보였다. 두 할머니의 앞뒷집에 사는 분들이 함께 모여 메론 잔치를 벌이고 있었던 것.
“여 앉아서 시원한 메론 먹고 가.” 자연스럽게 집 앞 마당 메론 잔치에 합류해, 룸메 하영언니와 나는 메론을 실컷 얻어먹었다.
영국이 아저씨는 차가 없어 버스로 출퇴근 할 때, 봉동 터미널에서 자주 만났던 분이다. 아저씨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저씨도 항상 봉동에서 삼례로 가는 5시 57분 버스를 타셨다. 2~3번 보다보니 궁금함이 생겨 먼저 말을 걸었다.
“아저씨도 삼례 가시나 봐요” 처음 보는 사람의 뜬금없는 말에도 웃으며 대답하셨다.
“응. 자네도 삼례로 가? 거의 매일 타네?” 그렇게 나의 퇴근 말동무가 되었던 영국이 아저씨.
아저씨의 인자한 미소는 참 사람을 편하게 했다. 아내분께 요리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나에게 음식 레시피를 알려주시곤 했다. 슬프게도 차가 생긴 후로는 통 아저씨를 못 뵈었다. 언제 시간 맞춰 봉동터미널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아저씨를 태워드려야겠다.
화산할매는 고산 터미널에서 출근할 때 자주 뵈었다. 이름은 안 가르쳐주시고 나이를 먼저 밝히신다.
“내가 90이 넘었어. 90 넘은 사람 이름 알아 뭐할라 그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혼자 장도 잘 보러 나오시는 할머니. 어찌나 귀가 밝으신지 내가 하는 얘기도 다 알아들으시고 어찌나 기억력이 좋으신지 내가 한 얘기를 다 기억하신다.
정겨운 우리 동네. 참 살기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