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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날 모고지마을] 사돈에 팔촌까지 온 마을이 한 식구2018-09-03

[비 갠 날 모고지마을] 사돈에 팔촌까지 온 마을이 한 식구

[비 갠 날 모고지마을] 파평윤씨 집성촌

 

사돈에 팔촌까지 온 마을이 한 식구

 

방물장수 애용하는 고즈넉한 마을

아직도 주민 대다수는 파평윤씨


 

땅은 며칠간 내린 비로 축축했다. 온 나라를 괴롭히던 한 여름 땡볕 대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주위를 맴돌았지만 그래도 마을을 구경하기에 훨씬 수월한 날씨였다. 이서면 이문리에 위치한 모고지 마을은 파평윤씨 집성촌이다. 과거에는 모든 가구가 윤 씨였지만 최근에는 외지에서 들어온 타성도 적지 않다. 그래도 아직까지 마을의 반 이상은 윤 씨들로 사돈에 팔촌까지 모두 한 식구들이다.

 

마을 골목에서 윤석필(80)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가 모는 경운기에는 부인 신분례(74) 할머니가 타고 있었다. 할머니는 새벽녘 보따리를 싸들고 전주 남부시장에 다녀온 참이다. 새벽 6시반차를 타고 이서에서 나가 고구마순, 쪽파 등을 시장에서 팔고 왔다.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서 복숭아와 사과를 꺼내 내밀었다. “시장에서 누가 준거야. 이리 와서 먹어. 난 많이 먹었어.”



윤석필-신분례 부부가 마당 앞 나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석필 할아버지는 모고지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지금 사는 집터는 그의 아버지 때부터 살았다 했으니 할아버지가 이 터에서 산 기간만 해도 팔십년이다. 집 마당에는 크게 자란 대추나무가 있다. 스물 몇 살 쯤 된 나무다. “대추나무를 내가 심었어. 추석 때나 되어야 익을 텐데 그래도 하나 먹어봐. 대추를 보고 안 먹으면 늙는대.”


석필 할아버지 댁 앞에는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 그 나무 아래에서 손인주(73) 할아버지가 쉬고 계셨다. 큰 나무도 아니요, 다른 사람은 앉을 자리도 없었지만 인주 할아버지에게 그 작은 그늘은 충분했다.


“50년 전 전남 완도에서 이 마을로 왔어. 6·25 때 피난 와서 전주서 살다가 여그로. 농사는 6년 지어봤는데 남는 것이 없었어. 차라리 품삯 받고 일하는 게 낫더라구. 나는 조경을 혔어. 이 느티나무도 내가 10년 전에 심은 거여. 가끔 산책 나와서 여기 그늘서 쉬다 가고 그래.”



방물장수 트럭에서 여느때와 다름없이 물건을 구입하는 손인주 할아버지.



골목에서 방물장수의 트럭이 나타났다. 마을의 정적을 깨는 반가운 요란함. 그늘 아래 쉬고 있던 단골 고객을 발견한 방물장수가 차를 멈췄다. 인주 할아버지도 트럭이 반갑다.




계란 한 판 줘.”


매주 수요일마다 모고지 마을을 찾는다는 방물장수의 트럭에는 계란, 마늘, 라면 같은 먹거리와 휴지, 샴푸 등의 생필품이 가득하다

 

여가 조금 비싸. 근데 읍내에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같아서 여기서 사곤 하지.”

 



모고지마을에서 아침 산책 중인 피노키오 어린이집 아이들.



비를 머금은 논과 밭은 초록의 생기로 가득했다. 자연의 생기만큼 눈부신 기운이 저 멀리 들려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을 초입에 위치한 피노키오어린이집 아이들이다. 이곳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과 달리 가공의 흙과 놀이기구가 있는 놀이터가 아닌 논과 밭에서 논다. 아이들은 논밭을 구경하고 있었다. 친환경 우렁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논에서 한 아이가 우렁이를 찾아냈다.


우와 우렁이 알이다. 선생님! 여기 봐요. 우렁이 알이 많이 붙었어요.”




네 살배기 아이들은 신발에 붙은 무당벌레를 찾고 집을 잃은 달팽이도 찾아냈다. 하늘을 나는 잠자리를 보며 인사했다

 

김금남 선생님은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밖에 나왔어요.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차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마을 한 바퀴 도는 것이 놀이라며 웃었다.


농번기의 마을회관은 사림이 오지 않아 적막하다. 수확을 위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바쁘게 일하는 것이 농부의 숙명. 하지만 8월이 끝자락을 향하면서, 그리고 최근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서 마을회관에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수한 노랫가락을 따라 살며시 회관의 문을 열었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신다. 대화에는 큰 주제가 없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신다. 뉴스, 이웃 이야기 등. 두서없는 말들이지만 흐름이 자연스럽다.


회관에도 규칙이 있다. 바로 나이 많은 어르신께 인사하기. “인사를 혀야지, 나보다 더 잡쉈응게. 근디 오셨냐고 인사 혔는디도 대답 안하네.” 회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혼자 있는 집보다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회관이 더 좋다는 어르신들. 복날과 같은 잔칫날이 되면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음식도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엉겁질에 시집 온 거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나는 몰라. 어떻게 인생을 살아온 지도 모르고. 지금 이 나이 먹으니까 허망하고 아쉽고 청춘이 어떻게 지나갔는가 싶어. 이제 죽기만 바라는디 치매만 안 걸리고 살면 좋것어.”


다른 할머니도 말씀하신다. “아무 거시기도 없어. 우리는 이미 인생이 끝났어. 뭐 재미가 없어 하나도. 그래도 손주 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크니까 멀어지더라고.”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가까웠던 것도 멀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어르신들은 말씀하셨다.



윤석필-신분례 부부의 가족이 된 고양이, 나비.



마당으로 한 마리의 고양이가 슬며시 나타났다. 길거리를 배회하다 어느 날 윤석필-신분례 어르신의 가족이 된 녀석이다. 이름은 나비’. 이름 없던 고양이가 나비가 되었고 살 집이 생겼고 그리고 최근에는 새끼를 낳아 엄마가 됐다. 스치던 관계가 인연을 맺고 가족이 되는 것. 이것이 어르신들이 말씀하신 인생의 한 모습이 아닐까.


 


비개인 모고지마을의 상징인 용시내는 하루 전 내린 비로 흙탕물이 흐로고 있다.




골목길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모고지 마을은

모고지 마을은 파평윤씨 집성촌이다. 현재 44가구가 살며 이중 80% 가량이 파평윤씨이다. 주민들의 연령대는 60대 이상으로, 최고령 어르신은 86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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