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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위봉마을]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공간2018-06-04

[고개 너머 위봉마을]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공간

[고개 너머 위봉마을]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공간


 



봉은 상상의 동물이다. 예로부터 암컷인 황과 함께 왕을 상징했는데 그 전통은 우리나라 대통령 휘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양면 위봉마을은 봉이 둥지를 튼 형세 위에 있다. 송광사 벚꽃 길을 지나 위봉재를 넘거나 대아호수 드라이브 길을 달려 위봉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위봉마을.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곳이다.

 


편백나무 향 가득한 봉의 둥지


마을을 찾은 날 아침,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위봉산성은 그 잔해로 촉촉했고 비에 씻긴 잎들이 일대 녹음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1407(태종7)에 축성해 1675(순종1)에 중수했다는 위봉산성은 오늘날 서문만이 홀로남아 우리 앞에 서 있다. 위봉마을은 이 산성과 함께 시작되었다는데 노역에 동원되거나 성으로 징집되었을 조상의 고단함이 그 후손에게 복으로 돌아온 것일까 산성이 품은 마을은 전체적으로 아늑했고 주민들도 순후해 낯선 이를 배척하지 않았다.






위봉재에서 출발하는 편백숲길은 마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시작되었다. 이 산책길은 도솔봉과 장대봉 사이를 3부 능선 높이로 가로지른다. 길은 평탄하고 완만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물을 흠뻑 머금은 편백나무가 평소보다 더 활동적으로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대체로 조용한 가운데 간간히 경운기소리가 들려왔다. 산 중턱을 완만히 돌아 숲길을 빠져나오면 위봉마을이 조성하고 있는 체험센터와 주차장이 나온다. 그 주차장과 맞닿은 곳에 허영수(78)-김천연(74) 어르신 부부의 밭이 있다. 부부는 이날 콩을 심고 있었다. 남편이 로터리 치며 나아가면 아내는 따라가면서 콩을 심었다. 호미로 파고 콩을 심고 묻는 그 일련의 반복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이날은 흙밖에 안 보였지만 조만간 파릇파릇 싹이 이곳에 돋아날 것이다.





정류장에서 만난 이경옥(79) 어르신은 갓 뜯은 상추가 가득 든 비닐봉지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상추를 뜯었는데 너무 많아서 전주 모래내시장에 주고 가려고. 갖다 주면 없는 사람 먹어서 좋고 나는 줘서 좋고. 다 좋지. 좀 줄까?” 봉동 사는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이 마을에 있는 딸의 집에 들려 텃밭을 가꾸고 있다. “딸이 작가야. 드라마작가. 근데 저기 한옥 보이지? 거기 올라가서 보면 이 마을 풍경이 좋아. 아주 멋있어.”





한옥 마당에 서자 정말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옥 주인 신명숙씨는 지인으로부터 솔잎효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 그 비법을 함께 배웠다. 물과 설탕, 깨끗이 씻은 솔잎을 같은 비율로 섞어 봉한 후 그늘에서 일정기간 발효시키면 솔잎효소가 된다. 이때 설탕 알갱이를 완전히 물에 녹인 뒤에 솔잎을 넣어야 제대로 된 효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솔잎이 설탕물에 잠기도록 눌러놓는 것도 중요하고.


 



이말례(80) 어르신은 밭에 앉아 풀을 뽑고 계셨다. 작은 발에는 어여쁜 분홍색 털신. 눈이 오면 자꾸 미끄러져 지난겨울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직접 산 신발이다. “밭일은 점심때까지만 할라고. 그때는 아들이 오니까. (아들)힘드니까 나 혼자 해야지. 여기 풀 뽑고 콩을 바로 심어야 영글어. 시방은 마을 사람들 다 죽고 떠났어. 돈 벌려고 버섯도 키웠어. 나무에다 구멍 뚫어서 약 넣으면 버섯이 크거든.”


 


행궁터 등 발 닿는 모든 곳이 문화재





40여 가구가 사는 위봉마을은 마을 전역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위봉산성, 위봉사, 행궁터, 봉수대 등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거북바위 등 곳곳에 이야기가 숨어있다. 위봉산성은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피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됐다. 오늘날 터만 남은 행궁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행궁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궁궐을 말하고 왕의 초상화는 왕과 동급이다. 현재 행궁터에서는 복원을 염두에 둔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위봉산성


위봉사 둘레에 있는 소원탑.



축조당시 위봉산성은 길이가 16km에 이르고 동··3곳에 문을 갖춘 장대한 규모였다는데 지금은 서문인 홍예문과 일부 성곽만 남아있다. 산성 북문자리 근처에 위봉폭포가 있다. 폭포는 위봉산성, 위봉사와 함께 완주 9경에 속하는 절경. 송광사 벚꽃길과 대아수목원, 대아호수가 같이 9경에 속하니 밖에서 마을에 들자면 완주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경치 두 곳을 거치는 셈이다. 데크가 조성돼 폭포 앞까지 가서 구경할 수 있다는데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도 2단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했다

 

더위 속에 동네 이곳저곳 기웃대는 객이 안 돼 보였는가 손녀와 놀던 이달묵(61) 씨가 깍둑썰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수박을 내오셨다.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면 하늘은 이를 인정하는 어떤 징표를 내리는데 이를 상서라 한단다. 그 상서 중 으뜸이 봉황이라니 그 둥지에 깃든 위봉마을이 살기 좋은 곳임을 짧은 시간임에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비단 환경만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수박이 참 시원하고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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