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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너머 위봉마을] 이장이 들려주는 마을의 전설, 마을이야기2018-06-04

[고개 너머 위봉마을] 이장이 들려주는 마을의 전설, 마을이야기

< 이장이 들려주는 마을의 전설>

 

호식(虎食) : 절 앞의 터에 집을 지으면 호랑이 밥이 된다.

때는 40년 전쯤, 새마을운동 당시에 한 식구가 절 앞의 터에 집을 짓고 살았어. 그 사람들은 이 전설을 몰랐나벼. 어느 날, 며느리가 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라갔는데 그 근방에 산불이 났대. 불을 다 끄고 내려오면서 보니 그 집 며느리 송 씨가 호랑이 바위 밑에서 불에 탄 채로 발견이 됐다는 거여. 며느리뿐이겠어. 시어머니도 가마솥 앞에서 요리를 하다가 치마에 불이 옮겨 붙어서 홀랑 타버렸다네. 옛날 전설이 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여.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


공주샘 : 위봉마을에는 유사 시 태조어진을 보관하는 행궁이 있었어. 조선시대 때 공주들이 행궁 내의 사당을 방문하기 위해 이곳에 들리곤 했지. 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공간이기에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야겠지? 그래서 공주들이 목욕재계 하던 우물이 있었는데 그를 공주샘이라 했대. 지금 그 자리에는 큰 바위만 남아 있어.


거북바위, 호랑이바위, 고양이바위 : 봉황의 둥지를 닮은 위봉마을에는 바위에 얽힌 설화가 전해져 내려와. 저짝 사리봉에서 봉황 네 마리가 새끼 두 마리를 까고 날아갔거든. 넉사에 떠날리를 쓰지. 헌데 옆에 고양이랑 호랑이가 그 새끼 봉황을 먹으려고 하는 거야. 거북이는 호랑이가 무서워서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 형상이지.


 

< 이장에게 전해들은 역사이야기 >

도예터와 창터 : 현재 봉강도예가 있는 자리에 과거에도 도예터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방어용이었던 위봉산성에는 전투를 대비해 무기를 보관하는 창터가 있었다고 한다.


산성 쌓으면서 조성된 마을 : 위봉마을은 위봉산성 축조와 함께 시작되었다. 산성을 쌓기 위해 당시 7개 군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라고 한다. 숙종 원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성을 쌓기 시작했으나 그 시작은 태종 때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마을의 유래도 그 시기로 볼 수 있다. 정착과 관련해서는 성을 지키고 관리하기 위한 강제 이주라는 설도 있다.


행궁터 : 전란 시 전주성에 있는 태조어진과 왕조실록을 대피시킬 목적으로 산성과 함께 건립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전주성이 함락되자 태조 어진을 행궁 내의 사당으로 모시려고 했으나 행궁이 폐퇴하여 위봉사에 임시 거처했다. 위봉마을 문화유적 발굴과 함께 행궁터 복원도 진행되고 있다.


봉화대 : 도설봉의 봉화대는 전주성의 기린봉과 통했다. 도설봉은 전주, 익산, 군산이 한눈에 보이는 군사적 요새였다. 되실봉의 봉화대는 군산, 익산을 거쳐 충청도와 연결이 됐다.


누각 : 산으로 둘러싸인 위봉마을은 조선시대 때 세운 누각이 봉우리마다 있어 그 수가 6(?)에 달했다고 한다. 6.25때 산불로 인해 누각은 없어지고 현재는 돌과 기왓장 그리고 누각으로 향하는 갈지자 모양의 길만이 그 흔적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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