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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2018-04-03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

대문안마을 골목골목에는 오래된 농기구와 물고기가 산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았다. 제 소임을 다하려 짖어대는 개와 가끔 지나는 오토바이만이 이 고요한 마을을 흔들었다.  



대문안에 사는 사람들

엄격해도 각박하진 않아라

 

물고기벽화 예쁜 25번 버스 종점 마을

봄날 평온 속에 다시 맞은 농부의 시간

 


이혜원(39) 씨의 밭에선 고소한 깨 냄새가 났다. 작년 가을 냄새가 땅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와 이곳은 본시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밭엔 풀이 무성했다. 이놈들의 봄은 진즉에 왔었는가. 꽃 피어 예쁜 풀도 있었고 갓 땅을 비집고 올라온 애기 풀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농사의 적. 한 번 허락한 풀은 금세 퍼져 단단히 뿌리 내릴 것이다. 한 달 후에는 이곳에 참깨를 심어야 한다. 호미로 파고 한 손으론 잡아 뽑으며 반나절 째 풀과 씨름했는데도 혜원 씨의 풀밭은 아직 한참 더 남아 있었다.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된다고. 농부의 시간은 엄격하지만 각박하진 않아 보였다. 대문안마을의 모든 것이 그러해 보였다.

 

 

종점인 대문안마을에 정차중인 25번 버스


마을 앞 버스정류장에서 25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25번 버스가 지나는 길을 따라 차를 달렸다. 대문안마을은 25번 버스의 종점이다. 버스는 경로회관 앞에서 20분쯤 쉬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주민들이 이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배차간격이 2시간 20분으로 길어 필요한 시간에 버스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군에서 지원하는 콜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종점에서 출발대기하고 있던 버스기사 정문량(46) 씨는 “1년 동안 종점에서 태운 주민이 세 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대문안마을은 713번 지방도 양 옆에 붙어 있는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이 대문안길, 이성초등학교가 있는 서쪽이 대문안1길이다. 혁신도시에서 김제로 넘어가다 이서면 소재지 못미처 713번 지방도를 타고 쭉 내려오거나 전주에서 정읍으로 가다가 김제 대야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대문안마을이다. 가구 수가 60여 호가 넘는 제법 큰 마을이다.



마을 안 곳곳에 그려진 물고기 벽화




파란 대문집 앞에서 낮잠을 즐기다 사진기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고양이.

마을은 고요했다. 태풍이 시작되기 전처럼 농사가 본격화되기 전의 고요랄까.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난 존재는 놀랍게도 고양이었다. 낯선 사람을 만났는데도 당황하는 빛 하나 없이 여유가 넘쳤다. 대개 동가식서가숙 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담벼락. 붕어나 잉어 같은 물고기들이 담벼락을 헤엄쳐 다녔다. 이 벽화 덕에 마을이 훨씬 정감 있게 다가왔다. 아기자기한 벽화를 구경하며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대문안 14번지 방복례.’ 나무로 만든 예쁜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방복례(72) 어르신이 막 대문을 나서고 있었다. “막내딸이 해줬어. 문패도 없이 살았지.” 딸은 이렇게라도 평생 거칠었을 엄마의 삶을 꾸며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어르신은 젊은 날 남편을 여의고 막노동과 식당일로 오남매를 키웠다. 그 고단함이 눈에 선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밭과 논, 미나리 밭으로 이루어진 농경지가 펼쳐졌다. 멀리 미나리 종자를 심고 있는 한 농부가 보였다. 그는 체스터장화를 입고 가슴까지 물에 잠겨 일했다. 미나리에 둘러싸인 데다 파릇파릇 풀이 올라온 논둑에 섞여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집 근처에서 오늘 저녁 해먹을 반찬을 위해 쑥을 캐고 있는 김영애씨


김영애(65)씨는 그 근처에서 쑥을 캤다. 그녀는 고창에서 시집왔다. “이 동네 산지는 한 20년 됐나? 아저씨 고향이 여기예요. 전주서 살다가 아저씨 직장 그만두고 시골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들어오기 싫었지. 반대도 했어요. 나는 농사 못 짓는다고. 초반에는 전주가 그리 가고 싶드만 지금은 시골이 좋아요. 일 좀 없으면 시내(전주) 가서 친구도 만나고 놀다 와요.” 그녀의 아저씨는 앞서 미나리 밭에서 종자를 심고 있던 농부. 부부는 미나리와 복숭아를 재배한다. “지금은 농사 준비 기간이에요. 오늘은 미나리 모(종자) 심은 거예요. 남편은 무뚝뚝해요. 퉁명스럽다고 다들 그래요. 그래도 잘해요. 속 안 썩이고.”


이요순(78) 어르신은 복숭아나무 아래 작은 밭에서 풀을 매고 계셨다. “토란하고 옥수수를 심을 거야. 저쪽에 너마지기 땅이 또 있는데 들깨하고 땅콩을 심었어. 로타리 삯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세월아 가거라하는 거지.” 어르신은 50년 전 이 마을로 왔다. 익산에서 시집왔는데 사방이 꽉 막혀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두 지난 일이다.



적막한 길에 가끔씩 등장하는 조용한 소란, 오토바이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담장 위의 꽃무더기가 볕을 받아 반짝였다. 가끔 오가는 오토바이가 정적을 흔들었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정갈해서 곱게 늙은 할머니 같았다

 

? 이름은 안 되고 성이 백씨야. 백씨면 이 동네서 나 하나라 다 알라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백 어르신(77)은 전주 가는 버스를 타려 바삐 걸었다. 강의를 듣기위해 중앙시장에 가는 중이었다. “스트레칭도 배우고 메이크업도 배워. 금토일 빼고 매일 열려. 11시까지 가야해. 안 그럼 못 들어가.” 어르신은 큰길 삼거리로 나가 금구에서 오는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간다. 정류장에는 혈압약을 타기 위해 병원 가는 국 씨(76) 어르신이 먼저 와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백 어르신이 나라 국?”하니 칠국이라고 답하셨다.



회관안에 붙어 있는 담당 공무원 알림판. 고맙습니다.


때는 12시. 이렇게 오손도손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함께 점심을 먹는다.


경로회관 입구 벽거울에는 마을 행정·경찰 담당 공무원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느새 점심때가 된 것이다. 외로운 어르신들은 이렇게 경로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먹는다. 적게는 대여섯, 많을 때는 열 분이 넘는 날도 있다. 특별한 찬 없어도 홀로 먹는 밥보다야 백배 맛있을 터였다.    


마을 안 농경지 위쪽으로 1800평 규모의 방죽이 하나 있다. 주민들은 농업용 저수지였던 이곳에 2013년 붕어와 향어, 빠가사리, 메기 등을 입식해 낚시터를 만들었다. 마을 벽화도 이때 조성한 것이다. 처음엔 주민소득을 위한 유료시설로 운영했는데 지금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돈 안 받는다고 그냥 왔다가지 말고 군것질 과자라도 조금 사 경로회관에 넣어드리면 좋겠다. 낚시터에 오르니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논밭은 잿빛과 푸른빛이 뒤섞여 있었고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다. 며칠 뒤면 이 고요한 논과 밭이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잠시 좌대에 앉아 부드럽게 움직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봄볕을 쬐었다.




대문안의 열살 차 친구 중 형인 김경표 어르신이 밭을 돌보고 있다.




여러 빛깔을 가진 큰 물고기가 그려진 벽화 앞으로 발발이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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