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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간판에 말을 걸다] 고산 동일이발소2018-02-05

[오래된 간판에 말을 걸다] 고산 동일이발소

고산 동일이발소

형제가 사이좋게 마주보며 동일한 간판

 

이복권씨, 형님 세탁소 이름 따라 지어

 


고산읍내 구시장 거리에는 동일이라는 같은 상호를 쓰는 상점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하나는 형님이 하는 동일컴퓨터크리닝, 다른 하나는 동생이 하는 동일이발소이다.


돌아가는 이발소의 사인볼을 보고 만화 삼봉이발소가 떠올랐다. 작은 이발소에서 말을 하는 고양이와 함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이발로 치료해주는 이발사 삼봉의 이야기이다. 사람만한 가위를 들고 있던 이발사 삼봉을 떠올리며 동일이발소 문을 슬며시 열어보았다. 커다란 가위도, 말을 하는 고양이도 없었지만 그곳에는 오래된 이발소와 잘 어울리는 이복권(68)·김순옥(64) 부부가 있었다.



이발소는 언제부터 운영하셨나요?

지금 자리에서만 30년 정도 했어요. 구 시장 거리 저 밑에서부터 조금씩 자리 이사를 해서 이 자리에 정착했죠. 처음에 세내서 장사하다가 우리 꺼 되면서 벽지도 새로 하고 다 새로 했어요.

 

이발 일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 배웠어요. 열일곱, 여덟 됐었나. 처음 고산에서 배우다가 서울가서 좀 일하고, 그러다 군대 갔어요. 제대하고 다시 고향인 고산으로 내려와서 이발소 차렸죠. 그때만 해도 다들 먹고 사는 게 힘들었거든요. 기술이라도 하나 있어야 밥 먹는다고 해서 동네 이발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가서 배웠죠.



 이복권 씨가 정성스레 이발을 해주고 있다.



 견습생 생활은 어떠셨어요.

견습생들은 월급 안 받아요. 밥도 안 주죠. 그냥 일 배우는 거예요. 청소하고 빨래하고. 서울에서는 홍재문에 있는 이발소에서도 견습생 생활했는데 그땐 월급 좀 받았네. 고향 내려오고 중매로 우리가 결혼했어요. 결혼 후 바로 고산에 가게 차렸죠.

 

이발소를 열었을 당시 가까운 곳에 경쟁사(?)가 있었나요?

여기가 지금은 가게가 많아도 그땐 별로 없었어요. 새마을사업 하면서 이렇게 도로가 깨끗해진 거죠. 그 전에는 건물도 없었어요. 우리 말고 이발소가 하나 더 있었는데 라이벌이라고 할 것이 있나요. 이 작은 데서 경쟁해서 뭐해요. 손님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말고. 우리는 우리 이발소를 온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 할 뿐이죠.


왜 동일이발소에요?

형님이 먼저 고산에 가게를 여셨는데 그거 따라 짓느라고 우리도 동일이라고 했어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네요. 간판이요? 저것도 꽤나 오래됐죠. 청소 한번 안했어요. 이발소 사인볼도 옛날부터 쓰던 건데 원래 병원에서 쓰던 거예요.

 

언제 쉬세요? 이발소 운영하는 게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우리는 1이 들어간 날에 쉬어요. 요일로 쉬면 고산장날이랑 겹쳐서 안 되거든. 1, 11, 21, 31일 쉬는 거지. 보통은 새벽 6시에 여는데 예약 있으면 더 빨리도 열어요. 일이 고 되냐고요? 일이란 게 고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일 안하고 멀뚱이 놀아 봐요. 일하는 게 낫지.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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