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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간판에 말을 걸다] 구이종합떡방앗간수퍼2018-02-05

[오래된 간판에 말을 걸다] 구이종합떡방앗간수퍼

구이종합떡방앗간수퍼

간판이 세 개, 하지만 주인 간판이 없네

 

빈 떡 가게서 옛 간판 달고 시작

동네장사다보니 크게 신경 안 써 



구이면 구암마을 앞 도로는 과거 쉴 새 없이 차량이 오갔던 길이다. 순창이나 정읍 산외 방면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창과 임실, 전주를 지나는 27번 국도가 뚫리면서 마을 앞길은 한적해졌다.


이곳에서 한 60대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난로에 넣을 땔감을 손질하고 있던 차였다. 실은 우리가 이들을 발견하게 된 것은 간판 때문이다. 군데군데 뜯어지고 바랜 스티커로 구암종합떡방앗간수퍼라고 쓰여 있는 허름한 간판이 있었고, ‘피순대글자가 떨어진 사인볼이 있었고, ‘생닭이라고 적혀있는 간판이 있었다. 간판만 세 개. 이곳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동네 사랑방 내부. 아내가 난로 앞에서 물을 끓이고 있다.



우리가 여기 온지 한 7년 됐나. 이 가게가 일 년 정도 비어있었는데 노느니 뭐라도 한번 해보자 하고 여기서 떡방앗간을 시작했어요. 친정이 여기라 동네 사정은 다 알았죠. 옛날엔 이 집이 제일 잘 나갔어요. 근데 지금은 사람이 없죠. 요새 사람들은 떡을 안 만들어먹고 다 사 먹잖아요.”


가게의 옛 주인들이 해오던 간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유를 물었다. “간판이요? 뭐 하러 새로 해요. 동네 사람들만 오다보니 간판 없어도 다 알아서 와요. 예전에 했던 사람이 피순대를 팔았나 봐요. 슈퍼도 했고. 그래서 저런 간판들이 달려있어요. 굳이 뗄 필요가 없는 거 같아서 그냥 놔뒀어요.”


요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새 옷, 새 차, 새 집, 사람까지도 새 사람. 반면 부부의 주변에는 모두 오래된 것뿐이다.


이 집이 오래돼서 문짝도 안 맞아요. 손대려면 다 부셔야 해서 아예 손을 못 대는 거죠. 난로도 예전에 있던 그대로고 방앗간 기계도 그대로에요. 저 트럭도 30살 됐어요. 88올림픽 때 나왔으니까. 지금 저렇게 오래된 거 타고 다니면 욕먹어요. 사람들이 놀래죠.”


올해 30년 됐다는 트럭은 이곳저곳 상처가 많았다. 유난히 접촉사고가 많은 사연 많은 트럭이다. “얼마 전에도 앞사발(범퍼)이 큰 차가 박스를 실고 뒤로 오면서 이 트럭을 받아버렸어요. 오지마라고 했는데 받아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실리콘으로 깔짝깔짝 손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내 차 받은 차? 그냥 가야죠. 수리비 뭐 얼마나 되겄어요. 저번에도 사이드미러를 동네 동생이 쭉 받아버리니 아유 형님 죄송합니다그러고 가요. 이 트럭에 맞는 사이드미러 구하느라 힘들었어요.”


남편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기러기들을 보고 있다.



부부는 강아지 네 마리, 기러기 두 마리를 키운다. 닭도 키운다. 스스로 짐승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부다. “기러기 새끼들이 횡단보도로 쫑쫑쫑쫑 걸어 나오면 사람들이 차 세워 놓고 사진 찍고 그래요. 오리같이 귀엽잖아요. 우리집 개요? 네 마리에요. 엄마가 진주, 아빠가 여름, 새끼가 진순이. 저 복돌이는 업둥이에요. 누가 버렸는데 가여워서 데려왔어요.”


부부에게 정확한 가게 이름을 묻자 그런 것도 없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은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는 곳이다. “장사는 안 되어도 이런 공간 있으니까 좋아요. 가게나 집에 손님 오면 여기서 대접 할 수 있고. 장사는 오래 못 할 거 같아요. 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고.”


가게 앞에서 복돌이와 함께 한 컷



카메라를 들이대자 무뚝뚝하던 남편 얼굴에 웃음이 들썩인다. 낯선 카메라가 부끄러워 거절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부부와 업둥이라는 복돌이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남편 옷에는 일을 하느라 묻은 먼지가 가득이고 아내 역시 거울 한번 제대로 못 봤지만 둘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곤 말한다.


대체 오늘 이게 뭔 날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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