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아부지, 우리 동업합시다!2017-10-10

아부지, 우리 동업합시다!

아버지! 우리 동업합시다

경천 농업회사법인 완주베리 원종성-원보연 부자

 



농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농사짓고 살아가는 것은 순리였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다. 농부들은 자식들에게 고단한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식들의 삶이 도시에서 영위될 수 있도록 피땀 흘려 뒷바라지 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농사짓지 않는 것이 순리가 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면서 농촌은 고령사회로 변했다.

 

동업(同業)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말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해석되지 않는다. ‘부자지간이라도 동업은 절대로 하지마라는 말은 동업이 우리사회에게 얼마나 무서운 금기인지를 잘 나타내 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기를 바라고, 세상의 금기를 깨면서 살아가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업을 권하고 동업을 제안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아버지 원종성씨(57)와 블랙베리 농사를 동업하고 있는 원보연씨(31)는 어떤 방식으로 이 고단함과 금기의 영역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버지 원종성씨는 지역사회에서 유명한 블랙베리 전문가다. 



경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처음부터 농사지을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전공해서 프로그래머가 되는 게 꿈이었죠. 아버지 일 도와드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와 함께 일 한지 오 육년 정도 됐는데, 아버지와 일하면서 저도 농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처음 농업을 하기로 결정할 무렵에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는 농업이 맞는 길인데 결정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보연씨의 아버지 원종성씨는 지역사회에 많이 알려진 블랙베리 전문가다. 몇 번의 실패도 있었지만 블랙베리 농사부터 가공, 유통까지 일궈냈던 베테랑이다. 이런 베테랑 아버지와 신출내기 아들이 농사를 동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동업의 관계가 지속되고 성공하려면 서로 대등한 관계가 이루어지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부자지간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완주블랙베리연구회 회장 일을 맡고 계시는데, 막힌 스타일이 아니세요. 기본적으로 오픈마인드시고 무슨 일이든 토론하려고 하고 대화로 풀려고 하세요. 늘 저하고 상의하셔서 결정하시려고 하셨죠. 어린 시절부터 집안 분위기가 그랬어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동료 같아요. 아버지고 편하니까 일 하는 중간에 제가 하고 싶은 모임도 하고 잠깐씩 한눈도 팔고 그래요.”

 

보연씨는 농업회사법인 완주베리의 대표이사이고 전북청년농업CEO협회 회장 일도 맡고 있다. 전라북도의 젊은 농업인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정보도 나누고 네트웍도 다지는 모임이라고 한다. 완주에서도 완정농이라는 온라인 교류활동을 하면서 젊은 농업인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개월 전에 결혼해서 지금은 봉동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지만 몇 년 안에 기반을 잡아서 이곳 경천에 터전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갈수록 자신을 닮아가는 보연씨를 보며 원종성씨는 아들과의 동업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했다.


원종성씨와 아들 보연씨. 아버지의 동업제안에 자연스럽게 합류해 벌써 5-6년차 동업을 이어오고 있다. 



저는 예전부터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고 사업관계도 마찬가지고 동업자라는 표현을 많이 써요. 동업은 신뢰가 없으면 안 되거든요. 상대 배려 없으면 동업은 성공하기 힘들어요. 신뢰하고 배려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크게 성공은 못하더라도 망하든 흥하든 계속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동업자인 아들에게도 신뢰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저는 명예보다는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든 자신이 맡아서 하는 역할이 중요해요. 요즘에 보연이가 명예 쪽에 좀 치우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하는 말이에요. 기본적으로는 응원하지만 주어진 역할에는 성실히 했으면 하죠. 사회적인 활동은 하되 다시 돌아와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맑아져요.”

 

원종성씨는 우리나라 농업구조에 대한 많은 고민과 대안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정부의 농업정책도 그렇지만 농업인 스스로가 서로 조직화되지 않으면 농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것 등등.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일이건 후대에 누군가가 계속 한다고 했을 때 투자가 이루어지고 발전하는 건데 내 선에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밖에 안돼요. 농업인들이 자녀들을 외부로 보내려고 해요. 공부시킨다고 직장생활 시킨다고 뭐 어쩐다고 다 도시로 내보내는 거지요. 그래서 농업의 실패는 농업 하는 본인, 즉 부모였던 거에요. 처음부터 실패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죠.


농업의 실패한 원인을 자녀들을 도시로 보낸 농업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농업이 다시 생명을 키우고 지켜내는 천하지대본으로 서려면 자녀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에선 부자관계보다 농업관계를 우선시한다. 신뢰가 없으면 성공도 어렵다.



기왕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농사를 지으려면 이들 부자처럼 동업관계였으면 좋겠다. 농업을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는 숙명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무겁고 엄두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바람의 아들이종범은 안다.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가 올 한해 화제였다. 출중한 아버지를 둔 아들이 중압감을 못 이겨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었지만 이정후는 신인으로서 가장 많은 안타를 쳐냈고 청출어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런데 이종범은 아들 정후에게 야구에 대한 조언은 일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인사 잘하라는 말 이외에는 야구에 대한 그 어떤 기술적인 코치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제법 유명한 농업인 원종성씨가 초보 농업인 보연씨와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떡 빚는 에너줌마가 나가신다
다음글
팽나무 아래 두 여자 이야기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