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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11] 농촌의 경제학…만능인의 탄생2017-08-08

[남현이의 청년일기-11] 농촌의 경제학…만능인의 탄생

농촌의 경제학…만능인의 탄생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은 못하는 것이 없다. 농사를 지어 자신의 먹거리를 자급하고, 창고가 필요하면 손수 짓는다. 집에는 공구가 즐비하며 심지어 하나의 공구를 여러 개씩 소유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다는 어르신에게 어떤 일을 맡겨도 그는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낸다. 너멍굴 진씨는 지금까지 분업과 전문화를 생존명제로 교육받아왔다. 그런데 농촌에서 신인류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신인류들은 못하는 것이 없는 자들, 만능인이었다.


만능인은 시골에서 한두 명의 특출한 존재가 아니다. 어느 골짜기를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너멍굴 건설이 벽돌을 쌓고 있으면, 쑥을 캐러왔던 한 어르신이 발걸음을 멈추고 벽돌조적에서 미장, 조적건축의 이론 전반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나무를 베고 있으면 엔진톱 및 목공구의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논에서 풀을 매던 어르신이 나와 무심한 듯 말하고 지나간다. 간단한 보일러나 자동차 수리는 동네 농사꾼 아무나 붙잡고 물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농민들은 농사를 배우고 익히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왜 그것들을 모조리 익히고 연마하였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용접의 간단함을 설명하던 길수 어르신에게 왜 그걸 다 배웠냐고 물었다. 어르신은 답했다. “농민이 다 사다 쓰면 금방 호주머니 털리는 것이여.”


농산물이 값싸니, 농민의 벌이라는 게 뻔하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모든 것을 배운 것이었다. 무자본 농민 진씨는 그날부터 만능인들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너멍굴 만능인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자고로 시작을 마음먹었으면 그 목표는 허황돼야 제 맛이다. 자급률 50%를 목표로 잡은 진씨는 하루에 소비하는 모든 것들을 적었다. 그것들 중사서 쓴다면 돈이 많이 나가는 것들부터 자급하기로 한다. 처음 배운 것은 직조였다. 농사에서 끈이나 줄, 보자기는 여기저기 쓸 곳이 많다. 널리널리 홍홍이라는 가게를 찾아 2일간의 직조 특훈을 받았다. 물론 머리에 남은 건 지게 끈으로 쓸만한 직조법이 다다.


다음으로 익히기 시작한 건 전기설비였다. 어느 날 너멍굴의 전등이 나가자, 진씨는 오래된 티비를 고치듯 전등의 이곳저곳을 쳐보다 전기에 감전되는 사태가 있었다. 찰나의 시간 진씨는 많은 것을 보았다고 했다. 이것저것 해봐야 전기에 감전돼 죽으면 말짱 헛것이구나. 가장 가까운 기술을 모르니, 그를 두고 바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 바보겠는가. 이후 전환기술 협동조합으로 굽신거리며 들어간 그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과 함께 전기의 기본을 배웠다. 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지라 지금도 매일 익힌 기술을 까먹지 않기 위해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은 용접이다. 나무와 흙으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자만했던 진씨는 철없이는 반쪽짜리 세상임을 깨달았다. 닭장의 철창도 간단한 골조도 용접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이의 기술을 돈을 주고 사와야 한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쇠를 써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이것도 전환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자고로 배울 땐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없다. 머리를 한껏 조아리고 익히고 질문하기를 서슴지 않기를 2일하니,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다른 이의 손에 맡겨왔던 것들의 원리가 눈에 들어오자 삶이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비어있는 호주머니에도 바라는 너멍굴의 모습이 하나하나 만들어 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혹자에겐 티도 안나 보이는 너멍굴 만능인 프로젝트는 지금도 자급률 50%를 향해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진남현(2016년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 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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