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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2017-04-03

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

양심을 지키는 백색의 할아버지

운주 완창마을의 강희목 어르신


 

운주 대둔산 아랫마을에는 백색의 간달프가 살고 있다. 옷과 신발, 양말, 머리카락, 수염. 온통 흰색이어서 눈이 부신 강희목(94)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간달프가 생각났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간달프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지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팬이라면 간달프가 누구인지 알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악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고 평화를 되찾기 위해 반지원정대가 꾸려지게 된다. 이들의 긴 여정을 안내하는 조력자이자 마법사가 바로 간달프다. 반지원정대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큰 도움을 주지만 결국 목숨을 잃는다. 곧 큰 전투가 벌어지고 반지원정대는 불리한 싸움을 해야 한다. 그때 협곡 너머에서 광채와 함께 부활한 백색의 간달프가 나타난다. 반지의 제왕 3편의 시리즈 중에서 나는 이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강희목 할아버지와 간달프는 백색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강희목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고산고 소녀들과 함께 만든 시간을 잡는 소녀(이하 시잡소)’잡지 취재를 위해 특이한 복장을 입고 다니는 어르신을 수소문 했다. 운주완장마을 최현주 사무장님의 제보로 어렵게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푸른 대나무밭 아래 소담한 집. 그곳에서 백색의 강희목 할아버지를 만난 것이다. 잡지 지면 관계로 하얀 복장에 대한 짧은 글과 사진이 실렸지만 할아버지 구술 녹취한 것을 풀어낸 것만 해도 A4용지 20장 분량이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인생철학들을 풀어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때가 되면 완두콩에 자세히 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로 이 인터뷰는 시잡소 친구들과 공동 작업한 것이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갔다. 할아버지 집은 잠을 자는 본채와 공부하는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공부를 하고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이 수시로 찾아온다. 젊은 시절 지향한 뜻이 있어 1957년부터 시작한 공부다. 인륜을 바로 세우는 대동명륜회 활동과 태교생활운동, 양심회복운동, 흰옷입기 운동. 별개의 활동으로 보이지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할아버지 평생의 인생철학이 되었다. 60년 동안 할아버지의 작은 집에는 전국의 철학자, 민족학자, 종교인, 예술인, 젊은이들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무작정 찾아간 날이 장날이었는지 별채 신발장에는 신발이 그득했다. 엄청난 기운에 망설이며 별채 문을 열었는데 순간 하얀 광채에 압도되었다. 하얀 옷을 입은 33인이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이 음력으로 3.1이었다. 민족해방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의 민족종교인들과 도인들이 모인 것이다.

 

음력 3.1절을 기념하여 흰옷입기운동본부 사람들과 함께



흰 옷은 우리 민족이 즐겨 입던 옷

범상치 않았다. 작년에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흰 옷에 대한 나의 생각은 백바지에 백구두 신은 멋쟁이 노신사를 떠올릴 정도로 단편적이었다. 왜 흰 옷만 입으시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으로 우린 이 인터뷰가 길어질 것을 직감했다.

 

우리나라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잖아. 흰옷 입은 사람. 우리는 원래 흰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야. 그래서 천손민족이라고도 하고. 즉 하느님의 자손, 귀한 민족이라는 말이야, 일정 전까지만 해도 다 흰옷을 입었어. 근디 일본 사람들이 와가지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시키기 위해 흰 옷을 못 입게 한 거지. 큰 붓에 먹물칠해 가지고 등허리에다가 직직 그셨싼게 입고 댕길 수가 없게 된 거지

 

어둠의 시대는 가고 밝은 시대가 온다는 강할아버지의 말씀과 백색의 33인 속에 앉아있던 몇 시간이 낯설기는 했지만 하얀색이 주는 편안함에 묘하게 나른해지기도 했다.


흰 옷은 우리 민족이 즐겨 입던 옷이고,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뿌리다. 흰 옷을 입고 바른 마음으로 잃어버린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철학이다.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에게 조력자가 되고, 이런 할아버지의 조력자는 부인 이정희(92) 할머니다.

 

운주면 금당리 천등산 아랫동네에서 태어나서 열아홉에 두 살 아래 소녀와 혼인을 하고 칠남매를 낳고 키우셨다. 몇 해 전에는 결혼 70주년을 기념하여 할아버지가 할머니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 밥해먹이느라 평생 고생한 할머니의 노고를 할아버지는 잘 알고 있다.




한 치도 소홀함이 없이 여자의 도리를 실천하심은 이 세상 여성 중의 여성으로 사료됨을 인증하고 존중합니다. 본인인 강희목이가 여기까지 옴은 선녀이신 이정희 당신의 노고와 성현지심이 아니고는 현재까지 올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할아버지 따라 흰 옷을 입는다. 입어보니 마음이 편해지고 좋다고 하신다. 요즘 젊은이들이 입는 커플룩의 진수다.

 


강할아버지의 추천으로 선발된 운주면의 효자효부데 대한 책. 할아버지 서재에 가면 오래된 서적들이 그득하다



양심이 바로 서는 것에 대하여

산수유나무 아래 앉아 나의 우문과 할아버지의 현답이 오가는 봄날의 호사를 누렸다. 내가 생각하기에 할아버지의 철학과 깨달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인 것 같다.

 

과거는 양반세대, 현재는 물질세대, 앞으로는 양심세대가 올 것이다. 현재는 양반을 대우 안 해주듯이 후천에 가면 현재 권세가, 돈 가진 자, 비양심가와 이기주의자는 사람대우 못 받고 사람 축으로 인정도 못 받을 것이다. 온 국민이 그것을 원하면 그 세대로 변하는 거야. 현 세대를 보면 비양심적인 대통령을 국민은 원하지 않아. 양심에 양자가 두 양자인 사람이 많아. 마음이 두 개인 사람. 여기서는 이 말하고 밖에 가면 딴 말하고. 이제부터라도 어질 양자를 써야해. 양심은 자기가 말을 하면 그대로 지키는 것이 양심이야. 진짜 良心이 있어야 해. 온 국민이 양심가를 원하기 때문에 앞으로 양심시대가 되는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우문현답 중 하나.

: 할아버지. 그런데 새 세상이 오긴 왔나요?

강 할아버지: 아믄. 이제 새 세상이 왔지. 천심(天心), 본심(本心), 진심(眞心), 정심(正心), 효심(孝心), 그리고 양심(良心)을 마음에 품고 살면 언제든 새 세상이 오는 거지.

 

간단하지만 강력한 할아버지의 말들. 대둔산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내내 맴도는 말들이다. 때 탄다고 장롱 속에 넣어 두었던 하얀색 스웨터를 벚꽃피기 전에 입어봐야겠다.

 

 /글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사진 권오영(시간을 잡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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