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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읽는 세상 1] 시인이 빠진 정치판이란?2017-03-07

[시조로 읽는 세상 1] 시인이 빠진 정치판이란?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위정자(爲政者)들이 지배하는 정치판을 시인들에게 맡기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까?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보다 더 좋아질까? 아니면 엉망진창인 세상이 될까? 아마 후자일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世界史)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만 둘러보아도 그 답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이 시인이 아직 있어 사회가 위기는 아니다라고 관료회의석상에서 당시 정치 상황을 언급했던 것은 제법 알려진 일화다. 또한 로마제국에서 유명한 정치인으로 활약했던 세네카 역시 시인이었다. 폭군으로 유명했던 네로 역시 멋진 시인을 꿈꾸었 던 것을 유추해 보면, 시인이 서구 정치세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이 어떠한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북송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소동파는 [적벽부]라는 유명한 시집을 남겼다. 여기에 등장하는 조조 역시 난세인 후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이자 당대의 시인이었다.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 중심에는 사대부 시인들이 있었다. 일본과 서구 열강의 야합으로 이루어진 강제 합병과 역사왜곡 때문에 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가 폄훼(貶毁)되었지만,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만큼 긴 시간 동안 조선이라는 문명은 지속되었다. 여러 가지 요인을 찾아볼 수 있겠지만, 정치적인 문제들을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에 근간을 두고 대의명분과 실리를 따지는 논쟁을 통하여 결정들을 했기 때문이다. 과거라는 공정한 제도를 통하여 시서예(詩書藝)에 능한 관리들을 중용하고 문치(文治)에 기반 했으므로 장구한 세월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조를 매개로 하여 정적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의 일례를 보자. 고려말 고려의 충신이던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하여 이방원은 하여가[何如歌]를 보냈다.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만수산(萬壽山) 드렁칡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우리도 이같이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에 대하여 포은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에도 문학적인 낭만과 상상력을 잃지 않았던 선비들의 여유로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정조대왕 재위 당시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 다산 정약용은 당시 강진과 완도에서 주로 생산되던 황칠나무를 보고 그와 관련된 백성들의 애환을 시로 노래했다. 탐관오리들의 황칠 수탈로 인해 피눈물 나는 삶의 현장에서 애쓰는 민초들의 눈물을 시인 정약용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시인은 고통에 겨운 농민들이 베어버린 황칠나무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올라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소망을 보았다. 죄인의 신분으로 유배지에 있었지만 수감생활을 한탄하지 않고 후학들을 길러내던 시인 정약용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을 황칠나무 그루터기에 투영하였다.

 

그대 못 보았더냐! (君不見)

궁복산 가득한 황칠나무를 (弓福山中滿山黃)

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 (金泥瀅潔生蕤光)

껍질 벗겨 즙을 받기 옻칠 하듯 하는데 (割皮取汁如取漆)

... 중략 ...


 황칠(黃漆) - 다산시문집 제4권 시()

 

흔히 예술가들을 시쳇말로 “4차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세계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조롱하듯이 내뱉는 말이다.

 

예술과 철학이 사라진 세상살이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굴뚝만 빼곡한 공장지대를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예술이 죽으면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이 사라져버린 판국에 정치(政治)는 불가능할 뿐이다. 시인은 변화무쌍한 미래의 일들을 현재에서 느끼며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이다. 또한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미래를 꿈꾸며 노래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선이 사라진 정치판은 말 그대로 정치꾼들이 모인 판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의 세계에 시인들과 예술인들이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 문화 예술의 주체들이 민심을 제대로 읽어내고 정치의 세계를 정화(淨化)해 내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그렇다고 조선시대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문인(文人)들과 예술인(藝術人)들이 정치해야 문치(文治)와 예치(藝治)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인들이 사라진 세상은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다!

 

/명륙 안우진(시조시인)

 

△ 3월부터 안우진 시조시인의 '시조로 읽는 세상'을 게재합니다. 안우진 님은 현재 완주공동체지원센터에서 '1111소통기금'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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