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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2] 운주면 금당리 2017-02-14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32] 운주면 금당리

완주군의 운주면 금당리


용계원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한자 표기 ‘용계원’은 용계원(龍鷄院)과 용계원(龍溪院)이 있다. 올해는 정유년 닭 해라니 ‘닭 계(鷄)’자 용계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예전 역원(驛院)있던 곳으로 견훤이 전주 입성을 할 때 마지막 밤을 여기서 지내고 출발했다는 전설이 있다. 칠흑같이 어둔 밤 ‘닭소리’에 놀라 일어났고, 뒷동산이 밝아 해가 뜨나보다 서둘러 80 리을 재촉 전주에 도착 뜻을 이루었다는 게다.


여기에 성이 있다. 있을 수밖에 없다. 신라가 백제를 칠 때 5만 군사가 지나간 길목이다. 물과 절벽 위에 쌓은 성이 ‘용계성(龍鷄城, 龍溪城)’이다. 6·25 전쟁이전 지소(紙所)로 유명했고 전주최씨와 밀양손씨 집성촌이었다. 전쟁 중 온 마을이 불에 탔는데 불 지른 주체 알 사람은 다 안다.


1960년대 말 주민 노력으로 금당분교를 열었고 초등학교로 승격 잘 나가다 이농현상에 따라 폐교된 지 오래이다.


조정식은 군의원을 여러 차례 했다. 근래 물 따라 모여드는 손님을 상대로 여름 장사가 잘 되는 곳이다. 옥배는 천등산 바로 아래에 있어 위압감을 느낀다. 천등산 샘물은 영험이 있어 하룻밤 사이에 피부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한다. 원금당은 윤씨가 많고 냇가 평상 영업으로 재미를 본다.


학현(鶴峴) 양쪽 산이 가까워 가로 막자는 댐 후보지로 입에 오르내린다. 전라 충청 양도에서 주목하는 자리이다. 여기를 높이 막으면 금당리 전체와 피목 고당까지 물이 차 산중 호수로 대단할 것이다. 주민의 반대야 있겠지만 농촌이 변할 수밖에 없어 해결 방안을 얼른 생각해 내는 측이 유리하다. 땅은 전라북도이나 물은 논산을 거처 금강에 들어가므로 충청남도에서 의욕을 보이며 이래서 운주면를 끌어가고 싶어 한다.


대둔사(大芚寺) 옛 절터도 있다. 석축이 뚜렷하고 넓어 발굴 조사 가치가 충분하나 학계의 활동이 미미하다. 활골[弓洞:궁동]은 여름에도 얼음이 있어 진안 성수 얼음 굴을 상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최씨 집안 물레방앗간이 있었고 꽃집 손영조 씨 댁 마당이 넓어 분교장 아이들이 체조하며 뛰어놀았다. 1970년대까지 담배 가게와 막걸리 집 셋이 있었다. 천등산 남쪽 너른 지역은 공공 특수시설을 하기에 매우 좋은 땅이다. 물과 길이 좋고 세상 만물에는 반드시 주인이 있어 언젠가 깜짝 놀랄 시설이 들어설 것이다. 버스 다닌 지 오래 자가용이 없어도 드나들만하다.


옛 사람은 시를 읊어 산천을 빛냈으나 현대인은 먹자 판 산골짝을 더럽히고 달아나 주민 피해로 돌아온다. 공중도덕과 매너 문제 학력 높은 꼴불견 소리를 듣는다. 금당분교 당시의 인연 나종윤과 손을정의 소식이 궁금하다. 이로 보아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서둘러야 한다. 만남과 교류는 인지상정 당연한 상식이다.


1960년대 말 금당분교 1∼2학년생도 나이 60이 가까울 게다. 사람은 만나야 정이 솟고 유지된다. 자꾸 주어드는 시골 사람 어디서 살던지 연락하고 정분을 나누며 사는 게 보통 삶이다. 묻거들랑 대답하며 살아가자. 손병훈 박종수 이희경 박종환 손세항 이정근 이 글 보려나?


불러 주면 가고 오라 하면 갈 수 있는 땅이 왜 이렇게도 멀다냐? 조만곤 최병준 최병읍 등 가도 못 만날 분 이에 슬프구나. 이 생각도 일종의 구수(丘首)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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