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아궁이, 그 따뜻함]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씨2017-01-09

[아궁이, 그 따뜻함]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씨

"사람이나 짐승이나 따뜻한 밥 먹어야 사는 거 같제"

가마솥에 소죽 끓이는 여태권 씨 

 

 

비봉면 원봉산 마을의 한 소막에 작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소 스무 마리가 있는 작은 막이다. 이곳에 사는 소들은 특별하다. 일반 사료가 아닌 소죽()을 먹고 크는 소들이다. 소죽을 만드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이 소들이 특별하다는 말에 동감하게 된다.

 

매일 오후 여태권(69) 어르신은 소막 안 아궁이 앞에 선다. 솥에 물을 담고 땔감을 아궁이에 넣는다. 그리고 수 분간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로 불을 붙인다. 그렇게 20여년. 그는 오늘도 소죽을 끓이기 위해 아궁이 앞에 섰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사료는 비싸잖아요. 그리고 내가 은퇴를 해서 할 일이 없어요. 이게 내 일이지.(웃음)”

고집이다. 고집이란 단어는 때로는 아집(我執)’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때로는 소신(所信)’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태권 어르신의 고집은 그의 바지런함과 신념에서 비롯됐다.

 

그의 소막에는 두 개의 아궁이가 있다. 송아지에게 줄 소죽과 소에게 줄 소죽을 끓이는 두 개의 아궁이다. 작은 난로는 완주군에 있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들어준 것이고, 큰 난로는 6년 여 전 여 어르신이 직접 만들었다.

작은 건 화력이 좋고 열효율도 좋아요. 일반 난로하고는 좀 다르대요. 송아지나 다른 곳에서 계약을 맺어 들어온 소에게는 영양가 좋은 소죽을 먹이는데 그때 이 난로로 만들어요.”

 

(위)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서 만들어준 작은 난로. (아래)6년여전 여태권 어르신이 직접 만든 대형 난로에 소죽을 끓일 재료를 넣고 있다.

 

 

그의 움직임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우선 가마솥에 일정량의 물을 넣는다. 다음 파레트 등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단단한 도끼로 힘차게 내려친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진 땔감은 아궁이에서 제 한 몸 불살라 빨간 불꽃을 일으킨다.

저것들에 불을 피워놓으면 불이 아주 예쁘게 올라와요.” 

 

소죽에는 쌀겨와 보리겨, 싸래기, 비지가 들어간다. 된장이 들어가는 날도 있다. 영양가 높은 재료들을 넣은 솥을 그는 한참을 휘젓는다. 가마솥에 밥이 눌어붙지 않도록.

지금이야 저 재료들을 돈을 주고 사지만 과거에는 다 집에서 나왔어요. 농사를 지으니까. 평소에는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를 얻어서 밥에 넣는데 된장을 넣는 날이 있어요.”

 

하루에 두 번, 오전 8시와 오후 4시가 소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다.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제법 맛이 좋은가보다.

제가 근처만 가도 먹이가 온 줄 알아요. 배고플 땐 저를 보며 펄떡펄떡 뛸 때도 있어요. 밥을 잘 안 먹으면 병이 난거죠. 밥 줄 때 애들 건강 상태를 봐요. 짐승도 사람같이 아프면 밥을 잘 안 먹거든요.”

 

그는 소죽을 끓이기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가 쉬면 소들이 밥을 굶어야 하니까.

나는 안 먹어도 짐승들은 밥을 줘야 해요. 제가 자유를 억압해서 우리에 들어가 있는 짐승들 밥도 안 줘봐요. 내가 나쁜 놈이지.”

(위)소들이 정성껏 끓인 소죽을 먹는다. (아래)어제 만들어 놓은 소죽을 소들에게 먹이고 있다.

 

 

그래도 겨울은 낫다. 그러고 보니 일 시작 전 단단하게 여몄던 겉옷을 어느새 벗었다. 추운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도 두 개의 아궁이 앞에서는 훈훈한 온기로 바뀐다. 하지만 여름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긴 여름엔 사우나에요. 목욕탕 갈 필요도 없어요. 땀으로 샤워를 하니까. 옛날 사람들은 다 이렇게 했어요. 20여 년 전에 16가정인가 함께 소죽 방식으로 시작했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은 다 사료 방식으로 바꿨을 거에요.”

 

5시 반, 겨울의 짧은 해가 졌다. 어둠이 오자 아궁이가 빛을 발한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따스하다. 포근한 겨울 밤이다.

저녁 6~7시 정도면 소죽 끓이는 것도 끝이 나요. 소죽을 끓이는 것이 제 하루의 마지막 일과죠.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요. 제 몸이 아파도 여기만 오면 나아요. 소죽을 줘야 되니까요. 사람 사는 방식은 여러 가지에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죠.”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아궁이, 그 따뜻함] 적정기술 배워 벽난로 직접 만든 진남현씨
다음글
[아궁이, 그 따뜻함] 50살된 구들에 대한 단상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