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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이의 청년일기-2] 출사표, 고산면민에게 고함2016-10-31

[남현이의 청년일기-2] 출사표, 고산면민에게 고함

나라에서 귀농을 장려한지 오래이나, 신이 미령하여 아직 뜻을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신은 본래 서울에서 먹물로 소일하던 자입니다. 그러던 올해 초, 삼례로 내려와 고산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전답과 가옥이 떨어져 있으매, 한 해 농사를 말아먹음이 자명하였지요. 이에 내년 농사를 위해 고산으로 세간을 옮기고, 뜻을 적어 면민께 올립니다.

 

농사의 기본은 문전옥답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농막은 전답과 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집안이 빈한하여 전답을 오가며 경작하던 중 아 이것은 아니 되는구나하는 탄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에 농토가 있는 어느 곳으로 든 이주할 뜻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뜻을 세우고, 출정을 준비하였습니다. 신에게는 원래 충복이 셋이 있었사옵니다. 서울서 감언이설로 속인 후배님이 하나요. 후일 멧돼지를 물어죽일 천하의 명장똥개, 밭거름 씨가 둘이요. 두 발로 굉음을 내며 달리던 오토바이, 적토마 씨가 셋입니다. 그런데 감언이설의 민낯이 들어나 후배님이 떠나시옵고, 음주운전을 종용하던 간신 적토마를 처단하니, 신의 가신은 오직 명장똥개, 밭거름씨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충신, 네 발 달린 라보트럭, 걸음마 1호를 영입하였지요. 그리하여 201610, 밭거름을 좌장으로 하고, 걸음마를 우장으로 하는 고산원정대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원정대가 꾸려지니, 귀인과 옥토가 나타났습니다. 뜻을 세우고 원정대를 조직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없던 차에 스승이신 종란 선생님께서 집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곧장 산을 넘어 그 집으로 달려가니, 전화가 터지지 않고, 주변에 민가와 가로등이 없는 무릉도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무릉도원의 형세를 보니, 뒤에 돌산이 자리를 잡고, 밑으로 논이 펼쳐진 골짜기로 천하제일의 명당이었습니다. 거기에 혹자는 그 자리가 습하다.’ ‘민가가 없어 외롭다.’라는 부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은 현혹되지 아니하고 출사의 뜻을 밝혀, 1021일 목요일. 일단 짐부터 옮겨놓는데 성공하였지요.

 

 

고산면 어우리에 자리잡은 진남현의 집. 대나무 울타리에 직접 쓴 문패에 걸어 두었다. 쌀쌀한 가을 방안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고산에 잡은 새 터전은 도전의 땅입니다. 불이 역류하고, 연기가 줄줄 새는 구들이 놓여있어, 구들의 원리를 공부할 동력을 제공해주었지요. 밤이면 고라니가 울어대고, 멧돼지의 흔적이 보이니, 좌장 거름이와 폭죽을 들고 응전의 태세를 갖추지요. 별과 달이 맑아 밤하늘을 보며 탁주 한 잔을 걸칠 수 있지요. 그 뿐입니까? 곳곳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휴경지가 널려있으니, 두 손에 오직 의지와 혈기뿐인 저에게 안성맞춤의 옥토입니다.

 

신은 석유를 쓰지 않는 농법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농사지어 쥐똥만큼의 소득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놈저놈과 나눌 아량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면 기계를 쓰지 않아야하는데, 그것은 아직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나 팔다리가 성한 몸뚱이가 있으니 힘닿는 곳까지 밀어붙여볼 생각입니다. 나라를 운영하는 데에 아주머니 두 분이면 충분하니, 골짜기 하나를 경작하는데 청년 하나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진남현(올해 완주로 귀농한 청년. 고산에서 여섯마지기 벼농사를 지으며 글도 쓰고 닥치는대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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