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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8] 고산면 성재리(聖才里)2016-10-06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8] 고산면 성재리(聖才里)

마을 이름부터 좋다.

△성(聖)은 ‘성인 성’자로 ①성인(聖人), 성자(聖者), 성현(聖賢), 대성(大聖)에 쓰이고 ② 불교에서 도(道)가 높은 스님을 성승(聖僧)이라 하며 ③기독교계는 성모(聖母), 성상(聖像), 성서(聖書), 성은(聖恩)이라 하여  종교적으로 높이 부를 때 이 글자를 쓴다. ④우리네 말 중 성군(聖君), 성대(聖代), 성명(聖明), 성상(聖上) 성지(聖旨), 성은(聖恩)은 임금 님에 대한 존칭이다. ⑤성단(聖壇), 성지(聖地), 성토(聖土), 성화(聖火), 신성(神聖) 은 ‘거룩하다’ ‘신성하다’로 최고 표현이다. ⑥시성(詩聖), 악성(樂聖), 화성(畵聖)하면 ‘잘하다’의 뜻이며 ⑦지극히 높여서 이를 때는 성웅(聖雄)이라 했다.

 

△‘재(才)’는 다 아는 바처럼 ‘재주 재’이다. ①재간(才幹), 재능(才能), 재담(才談), 재색(才色), 재치(才致)에서 ‘재’는 재주를 말한다. ②재(材)’와 통하여 재료를 가리킬 때도 이 자를 쓴다. 이름풀이가 긴 이유는 이처럼 잘 되기를 비는 마음이 간절해서이다. 자연도 좋아 높은 산이 ‘안수산(安峀山)’이고, 봉우리을 ‘계봉(鷄峰)’ 또는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른다. 이 산의 절이 안수암(安峀庵)인데 언제 세웠나 확실치 않으나 오래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 절 불 꺼지는 날이 고산 망하는 날”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래서 시주를 했고 문 닫히는 걸 막았다. 6·25전쟁 때도 불을 켰으며 그래도 미군 비행기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 이게 ‘고산정신(高山精神)’이다. 그런데 좋은 이름 성재리도 걱정이 쌓여간다.

 

▴인구는 줄고 ▴산 사람은 늙었으며 ▴떠난 사람 돌아오지 않고 ▴일손은 모자라며 ▴산 짐승은 논밭 습격을 하고… 열 받을까 보아 여기서 멈춘다.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억척스러워 강에 배를 띄웠고, 오산리 주민과 힘을 합쳐 ‘오성교(五聖橋)’를 놓았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뙤)놈이 받는다.’는 속담처럼 여름이면 오성교 다리 밑 시원한 그늘은 죄다 외지 사람이 차지하나 별 말이 없다. 장차 우리나라 서울, 부산, 대전 등 몇 개만이 남고 전국의 마을들이 거의 없어질 것이라니 사람 꼴 보지 못하면 아니 된다는 게다.

 

절 아래 마을이라 그런지 자비롭게 말을 한다. 고운 심성들을 지녔으니 성재리만은 이름 그대로 온전하게 잘 되기를 바란다. 조선시대에는 동하면(東下面), 혹은 삼기면(三奇面) 성재리이었으나 1935년 전주군이 완주군과 전주부(全州府)로 갈리면서 고산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여기 출신 윤재봉은 27대 고산면장을 역임한 후 비봉·운주면장을 거처 2016년 여름 군청 요직으로 옮겼다. 전화번호 책의 성스러운 작은 부락 화전, 성재, 송학 주민들 오늘도 좋은 대화 기쁜 소식 오기를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오직 평안하기를!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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