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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 좋은 지게대학생 남편과 대변인 똘방아내2016-10-05

손재주 좋은 지게대학생 남편과 대변인 똘방아내

손재주 좋은 지게대학생 남편과

그의 최측근 대변인 똘방아내

황현성 어르신과 부인 최혜영씨

 

   

오뉴월 댑싸리 밑의 개팔자라는 속담을 아는가. 댑싸리는 또 무엇인가. 시골 담장 밑에서 뚫고 나온 댑싸리의 여린 잎은 봄과 여름 사이 어른 허리만큼 자라난다. 조밀한 가지마다 잎이 촘촘하다. 그 댑싸리가 만들어낸 그늘은 개 한 마리 누워 자기 딱 좋다. 여름의 한 낮. 사람은 사람대로 정자나무 그늘아래서 쉬고, 개는 개대로 댑싸리 그늘아래 팔자 좋게 낮잠을 자는 모습이 그려진다. 가을이 되면 연두빛 댑싸리 무리는 벼가 익어가듯 노랗게 색이 변한다. 가지 끝이 여물고 이파리가 시들면서 누렇게 색이 변하면 마을어르신들은 낫을 들고 나오신다. 댑싸리비를 만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낫으로 벤 댑싸리를 탈탈 털어내고 비슷한 크기대로 모아 엮으면 대나무비보다 가볍고 쓸기 좋은 댑싸리비가 된다. 마당에는 댑싸리비, 토방에는 수수비, 방안에는 갈대비 몇 개 만들어 쟁여 놓으면 마음이 든든했다고 한다.

 

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직접 만들어 쓰던 시대를 생각해본다. 뒷산에서 자라난 나무며 강가의 키 큰 풀들이며 마을 가까운 곳에서 나는 것들이 모두 재료가 된다. 기술자라고 명명할 수 있는 특정한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생활 속의 필요한 기술을 자기식대로 익혀 써먹었던 시절.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지만 성한 몸뚱이 하나로 당당하게 버티던 시절이기도 하다. 죽어라 일만하던 어르신은 자신의 굽어버린 손을 낮춘다. 굽은 손을 마주한 젊은 나는 한 없이 낮다. 나는 그저 몇 자 적는 재주가 있으니 어르신의 손 안에 담긴 당당한 것에 대해 설을 풀어야겠다.

    

 

새끼꼬기에서 시작된 생활의 기술

운주 완창마을의 황현성(71)어르신은 손재주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몇 해 전부터 완창마을 공동작업으로 댑싸리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어르신이 안계시면 작업속도가 나질 않는다고 한다. 댑싸리비 하나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 15, 하루에 180개 정도는 가뿐히 만드신다고 한다.

 

황현성 어르신의 손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집게손가락이 많이 굽어 있다. 색도 거뭇하다. 시골에서 살면서 처음 입문하게 되는 생활기술은 새끼 꼬기가 아닌가 싶다. 처음 새끼를 꼬던 때는 12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랑 둘이 살던 시절이었다. 유전적인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귀가 안 들려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만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째깐할 때 맨날 방에서 뭐 하겄어. 할아버지가 방안에서 새끼 꼬고 가마니 만들고 그러는거 쳐다보면서 익힌 거지.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 오갈 때도 없으니까 이집 저집 머슴살이를 혔어.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몸으로 일하면서 산거지. 손이 좋으니까 왠만한 것은 다 손으로 고치고 만들고 그러면서 산거지.”

 

어르신이 만든 댑싸리비는 윗부분이 한 손에 잘 잡히게 날렵하고 중간부분에 속박이를 해서 아랫부분으로 갈수록 풍성하다. 가뿐하게 손에 잡히며 마당을 쓰는 싹싹소리가 듣기 좋다

 

수수빗자루 만드는 모습.

노간주 나무로 직접 만든 두부 물 짜내는 물건.

 

 

마룽에 앉아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집의 안주인 최혜영(63) 아짐은 어르신이 만든 근사한 둥구미, 댑싸리비, 수수비, 대나무 발, 노간주나무로 만든 두부 짜는 물건, 은행나무로 만든 절구 방망이, 호롱박 등을 마당 한 가득 내어 놓으셨다. 어르신이 애써서 만든 것들이라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자랑을 하고 싶다고 한다. 짚과 나무로 만들어 탁 나기 쉬운 물건들이 세 것처럼 상태가 좋다. 습기 많은 여름이면 햇빛에 내어놓고 말리고 닦고 신문지에 싸서 보관하는 성가신 일을 최혜영 아짐은 매번 도맡아 하신다. 심지어 44년 전 시집올 때 장만한 솥단지도 반질반질 윤이 난다. 옛날 것은 지긋지긋하다며 지나가는 고물상한테 헐값에 팔아버리는 여느 시골 아짐과는 참 다르다. 도시 사람들이 와서 어르신이 만든 소쿠리나 대나무발을 팔라고 해도 이제는 안 판다고 하신다.

 

나중에 아저씨 먼저 가면 그때 쳐다보고 있을라고. 이것이 다 추억이지. 임자가 없으면 쳐다봐야지. 이거 만드는 것이 여간 대건해. 저 양반 손이 다 까칠해졌어. 애써서 만든 것이니까 나중에 며느리 손자손녀한테 물려 줄라고 관리를 하는 거지.”

 



직접 만든 동구미.    

할아버지가 만든 물건들을 설명하고 계시는 최혜영씨.

 

너는 내 운명

황현성 어르신의 귀와 입을 대신 하는 건 안주인 최혜영 아짐이다. 최측근 대변인이라 할 수 있다. 귀가 안 들리는 어르신이 어디 가서 억울한 것을 뒤집어쓰게 될 때는 먼저 달려가 성깔 부리고 따져야 했다. 잘 따지기 위해서는 더 많이 듣고 봐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 나면 신문이나 책을 읽으셨다고 한다. 꿀리지 않고 잘 따지기 위해서.

 

최혜영 아짐은 19살 시집오던 때를 이야기 하며, 그 당시에는 당돌하게 자신이 먼저 어르신을 택했다고 한다.

 

넘의 집에서 황소를 끌고 나오는 걸 봤는데 아.. 멋있더라고. 그 모습을 보고 나를 굶기진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택한 거지. 남자는 배우고 똑똑하면 뭐하냐 그저 땅뙈기에서 열심히 일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지. 곡괭이질하고 땀 흘리는 사람이 좋겠더라고. 우리 둘 다 무식쟁이여. 내가 그래도 더 아는 것이 많으니까 내가 맞춰가면서 살면 되겠더라구.”

    

 

할아버지가 만든 댓사리 빗자루. 

 

할아버지가 만든 조롱박.

이것이 댑사리.

 

남의 집 사랑방에서 셋방살이를 하며 첫아기를 낳고, 어르신이 산에서 해 온 나무를 장작으로 패 한 다발에 600원씩 팔기도 했다. 손재주가 좋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일해 벌어 온 돈을 안주인은 알뜰히도 모았다. 살던 집에서 불이 나 다시 시작해야 했고, 어르신은 논산까지 가서 일을 구하느라 몇 해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홀로 가정을 지켜야 했던 안주인의 베갯속에는 늘 칼이 숨겨져 있었다. 귀 안 들리는 아버지를 자식들이 무시할까 봐 아이들 앞에서는 남편을 깍듯이 대했다고 한다. 밥상 앞에서도 아버지가 숟가락 들기 전에는 학교 지각하더라도 꼼짝 없이 기다리게 했고, 부부싸움은 하고 싶어도 꾹 참다가 아이들 학교 가고 나서야 양재기 던지며 싸웠다고 한다. 양재기가 찌그러졌다가 펴지를 반복하는 사이 소도 10년 키워보고 딸기 농사 12년 짓는 사이 빚도 갚았다. 아들자식 장가보내고 이제 다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 사람만 남았다. 일만 하느라 손가락은 굽었다. 굽은 손 안에 차곡차곡 담긴 생활의 기술들은 높고 당당하다. 서로의 인생을 가장 가깝게 지켜본 부부는 자신들의 인생에 대해 근사한 몇 마디로 정리를 한다.

    

우리가 평생 배운 것은 일밖에 없어. 우리 아저씨는 지게 대학교 나왔어. 내가 장난으로 그래. 맨 몸으로 지게 하나 메고 땅 파먹고 농사지으면서 살았으니까. 그것이 지게대학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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