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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 풍년을 걱정하고 울상 짓는 농부 201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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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게 기다리던 가을이 오셨다. 한 달 넘게 이어진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무더위가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물러난 다음이다. 누구는 한여름에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가을이더라고 했다. 원래 가을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그보다는 여름이 가버린 게 더 반가운 게다.

 

어쨌거나 가을. 곧장 결실의 계절이 따라 붙는다. 가을걷이를 상징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황금들녘’. 빛깔이 바뀌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들녘에는 지금 고개를 푹 수긴 벼이삭이 넘실댄다. 올해도 다들 대풍을 내다보고 있다. 그 앞에 슈퍼를 붙이는 이도 있다. 이변이 없다면 내리 4년 풍작인 셈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걱정이 한 가득이다.

 

풍년을 걱정하고, 울상을 짓는 농부라니. 정말 이상한 나라 아닌가. 엊그제는 전라남도 농민들이 올해 거둬들인 조생종 나락 20톤을 도청 앞에 20톤을 쏟아버리며 쌀값폭락에 울분을 토했다. 그 동안엔 나락 가마 적재투쟁이었다. 농민의 노여움도 그만큼 격해졌다는 얘기다.

 

나락 값이 3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쌀값은 농민의 봉급이다. 내가 30년 전 현장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받은 월급이 대략 15만원(일당 55백원)이었다. 지금 봉급쟁이더러 월급 15만원을 주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세상이 뒤집히는 난리가 났을 거다

 

풍년의 역설이라는 말로 때우기에는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 게다가 한 두 해도 아니고 벌써 4년째인데, 정부는 여적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책은 그만 두고 과잉생산이 문제라며 되레 농민을 탓하고 있다. 한 마디로 벼농사 짓지 마라가 대책이다. 실제로 논 타작물 전환이란 방침을 세워 반강제로 밀어붙였다. 식량자급률 20%대에, 주식인 쌀마저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대체 뭐가 과잉이란 말인가.

 

지금 김재수라는 사람이 여론을 달구고 있는 모양이다. 농림부장관에 내정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고, 결국 부적격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는 소식이다. 1% 저리 특혜대출에, ‘황제 전세, 어머니 의료비 특혜 따위 의혹이 줄줄이 불거졌다고 한다. 장관 쯤 해먹으려면 이 정도 비리는 필수요건이 된 지 오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눈에 띄는 대목은 그가 오랜 농업 관료생활을 거치면서 개방농정, 농업홀대 정책을 이끌어왔다는 지적이다. 특히나 5년 동안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을 지냈는데, 유통공사는 그 동안 농산물 값이 조금만 올라도 발 빠르게 해외농산물을 들여와 가격폭락을 부채질해왔던 곳이다. 쌀값 폭락을 부른 직접원인인 밥쌀수입 또한 유통공사 작품이다

 

하긴 농림부장관 따위의 피라미가 무슨 죄가 있으랴. ‘시장근본주의를 앞세워온 역대 정권 아래서 농업부처는 경제부처의 파견대에 지나지 않았다. 경제정책 기조는 물론 거대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농업부처는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농업과 농민을 통제하는 구실을 해왔던 것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결코 농민을 위해 만든 부처가 아니라는 거.

 

넉넉하게 일렁이는 들녘을 보고 있자니 다시 심란해진다. 또 한 해를 창고에 가득 쌓인 나락을 어찌 처분할지 애태울 생각에.

 

그러나 정치가 농민을 속일지라도 진짜 농부는 농사를 그만 두지 않는다. 비록 실낱같지만, 내일은 해가 뜨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찰박찰박 걸어갈 것이다. 위기에 닥친 식량주권을 되찾고, 건강한 먹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야 말로 세상을 이롭게 할 농부의 길 아니겠나. 우리는 다시 황금물결이 넘실대는 들녘에서 풍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잔치판을 벌일 것이다. 풍년아, 너는 죄가 없다.

 

 


 

/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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