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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반 오기반.. 울산 여순씨의 완주 정착기2016-09-05

포기 반 오기반.. 울산 여순씨의 완주 정착기

 

울산 아줌마의 완주 정착기

- 대복마을 여선희씨를 만나다

 

해질 무렵 만경강 들판의 풍경은 아름답다. 만경강이 끼고 도는 용진과 봉동, 삼례의 들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시사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산다. 가장 무더웠다는 2016년의 여름이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는 봉동읍 낙평리 대복마을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눈망울이 커다랗고 수줍음 많았던 울산아가씨 여선희(51)씨가 이십여 년 동안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어쩌면 저 아름다운 석양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집 앞 해지는 저녁 풍경.

 

 

여기 이사 와서 제일 좋았던 것은 해지는 것, 그것이 참 좋았어요. 울산 살면서 한 번도 지평선으로 해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곳은 산 너머로 해가 지지 땅으로 해가 떨어지질 않거든요. 근데 여기에서는 지평선이 딱 펼쳐져서 해만 지면 집에서 나와 해지는 걸 구경했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울산여자 완주에 오다

여선희씨의 고향은 울산이다. 자동차 공단이 있던 울산에서 살다 자동차 관련 일을 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완주에 새로운 자동차 공단이 들어서던 즈음에 남편을 따라 아무런 연고도 없던 봉동읍 만경강가에 자리 잡은 이곳 대복마을에 터를 잡았다.

 

“9410월에 남편이 먼저 오고 저희는 다음해 4월에 왔어요. 큰애가 다섯 살 작은 애가 돌 되기 전이었어요. 아들 둘은 초등학교도 다 여기서 다니고 여기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아무 연고도 없는데 이곳으로 온 거죠. 살면서 텃세 같은 것은 느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완주 진짜 좋다고 친구들한테도 이야기 하고 친구들도 자주 놀러 와요.”

 

젊디젊은 울산아가씨에게 처음부터 이 마을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산업도시에서 살다 버스도 잘 안다니고 밤이면 불빛 없이 깜깜해지는 시골마을은 낯설고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아파트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마당 있는 집에서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더 좋을 거 같아 눈 딱 감고 이 집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처음에 이사 와서는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저씨가 단독주택을 구했다고 해서 왔더니 무너져가는 토담집이었거든요. 아궁이에 불 때는 것도 그렇고 마을 어르신들 사투리를 못 알아들으니까 참 힘들었어요. 일 년 반은 힘들게 적응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인생이 180도 달라진 거죠. 이런 삶은 전혀 예상 못했어요.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포기 반 오기 반으로 산거죠.”

 

포기 반 오기 반으로 벌써 이십년

지금껏 이곳 완주에서 살아온 힘을 포기 반 오기 반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것을 이곳 삶에 순응하려는 절반의 노력과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절반의 도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십년 동안의 삶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계획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부침과 굴곡이 있었겠지만 이십년이 지난 후 지금 여선희씨는 마을에서도 지역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높은 파워우먼이다.

 

집에만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돌파구로 농촌지도소를 나가기 시작했죠. 교육받으러 다니면서 사람들을 사귀게 된 거죠. 말하자면 사교계에 진출한 거죠. 그때 이미용 교육을 받게 됐어요. 처음에는 영구머리를 만들어 놓기도 했어요. 여성자원활동센터가 생기면서 가입해서 체계적으로 봉사교육을 받았고 그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비봉 빈첸시오 요양원에서 미용 봉사중인 여순씨.

 

 

그녀의 농사와 봉사활동과 저녁풍경

안하면 불안하고 하고 나면 뿌듯해지는 봉사활동은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여성자원활동센터 봉동지역을 맡아서 미용봉사, 목욕봉사, 경로당청소, 농협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어지간한 마을의 어르신들도 그녀를 보면 지비 왔어하고 알아봐주신다고 하니,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봉사활동이야말로 그녀를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가장 중요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봉사활동이 지역사회 뿌리내리기의 원동력이었다면 농사는 마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중요한 도구였다고 한다. 울산에 살 때는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적이 없었지만 마을 어르신의 소개로 서마지기 논에 나락을 심고부터 지금껏 농사를 이어오며 마을주민들과 한 살이 됐고 마을 부녀회장 일도 6년 동안 했다고 한다.

 

농사짓고 안 짓고의 차이가 커요. 농사 안 지을 때는 어르신들과 공통 관심사가 없으니까 할 이야기가 없었어요. 근데 벼농사라도 짓고 나서부터는 아이고 집에 풀이 많이 나더라, 언능 논에 가봐.’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시죠. 어르신들이 참 부지런 하신 것이 새벽 다섯 시면 벌써 다 나와서 일하시고 우리 일어날 시간에 일 끝내고 들어가시니 우리가 볼 때는 아무것도 안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우리가 몰랐던 거지. 농사는 간단하고 편한 것이 없더라구요.”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서 이제 막 배추를 심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배추밭을 다녀오는 그녀의 모습엔 이십대의 아리따운 울산아가씨의 수줍음과 오십대에 접어든 베테랑 농사꾼의 여유로움이 해지는 서쪽하늘의 색조로 담겨 있었다.

 

마을 부녀회장을 6년 정도 했어요. 와일드푸드축제에도 참여하고 절임배추로 마을사업도 했죠. 제가 처음에 인수받을 때 통장에 47만원 있었어요.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이랑 으쌰으쌰 하면서 제가 8백만원 넘겨주고 나왔어요. 다 주민들이 도와준 덕분이죠.”

 

내가 만약 그녀가 살았던 울산으로 이주해 간다면 나는 그곳에서 그녀처럼 포기 반 오기 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의 농사와 그녀의 봉사활동과 그녀의 해지는 저녁풍경처럼 내가 그곳에서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삶은 허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실제하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적응하고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이우러질 수 있는 것이다. 울산 아줌마 여선희씨는 농사와 봉사활동과 해지는 저녁풍경으로 내게 삶의 가장 중요한 비밀들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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