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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6] 힐조타운 비봉면 봉산리 2016-08-08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26] 힐조타운 비봉면 봉산리

 


비봉산(고지도에는 고산현 뒤에 그려져 있음)과 봉실산(鳳實山, 鳳室山)이 동서에 있어 골짝 따라 이어진 마을이다. 고산의 원래 군 이름이 ‘봉산(鳳山)’이었으니 여기 봉산에 주목해야 한다. 땅을 파면 기와가 나온다니 고고학적 접근이 필요한 마을이다(이진수 증언).


 


완주에서 생강 처음 심은 곳이 봉동(鳳翔)이냐? 봉산(鳳山)이냐? ‘상(翔)’과 ‘산(山)’ 차이이다. 싸움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고산 봉실산 기슭에 ‘봉산’이 있으니 이곳이 시배지(始培地)일 가능성이 높다. 봉산 주민은 명예로운 일이니 사실을 알아내야 한다. 봉실산 중턱 약수는 부슬목(부스름) 치료에 좋다 해서 음력 칠월칠석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완주힐조타운’ 이야기 들어봤나. 드론 전문업체인 이스크는 ‘완주힐조타운’ 내 드론학교에서 드론 시범비행과 관련된 체험기회를 길게 줄 계획이란다. 이동진 드론학교장은 “원하면 늘 드론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완주힐조타운은 공중에서 멋진 감성을 체험하기에 으뜸”이라 했다. 완주힐조타운은 아트 쇼 ‘산 속 여우 빛’이란 주제로 불빛축제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김영호 기자).


 


‘소금바위[鹽巖:염암]’는 여러 의문을 불러낸다. 먹는 소금이 나는 곳이라면 당연한 이름이지만 그렇지 않고 소금처럼 4각형도 아니니 희한하다. 혹 흙 속에 바위가 있어 ‘속은 바위’ 이 말이 “소금 바위”로 바뀌어 질 수야 있다. 고산현의 큰 학자 구영(具瑩:1584∼1663) 묘가 월촌에 있고 묘비는 보호 가치가 충분하다. 송시열(1607∼1689)이 글을 짓고 송준길(1606∼1672)이 글씨를 썼다. ‘전주화산서원비’도 이 비석처럼 송·송 양인과 관계가 있어 보호각(保護閣)을 세웠다.


 


이 고장 출신 이을술(성주이씨)과 조재영(평양조씨)은 면장을 했다. 몇 년 전 돼지막(양돈장) 문제로 업자와 주민 사이에 시비가 잦았다. 마을 앞 냇물은 탄광 영향으로 고기가 살지 못한다. ‘사치(巳峙)’‘(뱀재)’는 같은 동네다. 잿길이 꼬불꼬불 뱀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죽산은 평양조씨 집성촌이고 마을 앞 소나무가 일품이며 동네 안의 은행나무는 오래된 부락임을 말해 준다. 동구 밖에 물레방아가 있었고 주인은 살림이 넉넉하여 대접 받으며 살았다. 이영석 아버지는 소 시장 거간을 잘했으며 이것도 생업이었다. 새빤이[새뱅이]고개를 넘으면 전주 땅 봉상면이었다. 율소리 부자 오인봉의 따님 현옥은 봉산 이씨 집안에 시집가 잘 살았으나 지금은 노쇠하여 병고에 시달린다. 차 한 잔 생각나면 도담에 들려 인생을 이야기 하라. 고산어우삼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다. 전에는 가을 배추 안 팔려 밭에서 상한 적이 있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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