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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마님과 머슴, 용진 산들농원 김도자-정영만 부부 2016-08-08

행복마님과 머슴, 용진 산들농원 김도자-정영만 부부

 

행복마님과 머슴에게

복덩이(복숭아)가 찾아왔당게

용진 산들농원 김도자-정영만 부부

 

 

복숭아의 계절이다. 초복에는 삼계탕을 먹고 중복 말복에는 복숭아를 먹어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랬다고 하니, 지금! 바로 이 순간 복숭아를 먹어야 할 때다.

 

예전부터 용진 지암리는 각시는 없어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오면 땅이 질퍽했다고 한다. 배수가 잘되고 보드라운 사양토 토질이어서 지암리에서 나는 과실들은 당도가 높다. 지암리에 자리 잡은 산들농원을 찾아 갔다. 3000여평의 지암리 좋은 땅에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고 나무마다 아이 머리만한 복숭아가 탐스럽게 달려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농원 가운데에 자리 잡은 원두막으로 주인내외를 만나러 갔다.

 

내 소개를 하기도 전에, 다가오는 나에게 들어와서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는 복숭아 서너 개를 무조건 깎아 주며 일단 먹으라고 하신다. 이것이 시골인심인가. 아니면 이 주인내외가 유난히 인심이 좋은 건가. 얼떨결에 탐스러운 복숭아를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거리는가 싶더니 새콤한 맛이 올라오고 오래 씹으니 달큰한 맛이 올라온다. 또 다른 걸 집어 입에 넣는다. 씹으니 과즙이 넘쳐흐르고 속이 뻥 뚫리게 달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먹고야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TV에 나오는 리포터마냥 맛있다는 걸 온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실성한 사람마냥 웃기만 했다. 참 좋은 맛이다. 앉아서 복숭아를 먹고 있는 사이에도 복숭아 사러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찾아오는 이들을 무조건 원두막으로 앉히는 역할은 정영만(61)씨이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접하는 이는 그의 부인 김도자(57)씨이다.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판매하고 있는데 아는 사람들은 우리 농원으로 직접 찾아와서 사가요. 기스(흠집)난거 덤으로 내가 챙겨주니까. 저 아저씨는 요 앞에 도로 공사하는 분인데 여름 내내 복숭아를 사가네. 뙤약볕에서 일해서 번 돈 우리 집에서 다 쓰고 가서 어쩐디야

 

김도자씨가 복숭아를 수확하던 중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탐스러운 복숭아.

 

백바지 멋쟁이와 아가씨가 만나 농사를 짓다

16년 전 복숭아과수원을 시작하면서 복숭아 수확하는 6월부터 8월 중순경 까지 이곳 원두막에는 복숭아도 가득하고 사람들도 가득하다. 김도자씨는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다. 용진면 부녀회 총무로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고 농업기술관련 교육을 받을 때도 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운을 불어 놓는 존재랄까.

 

우리 아저씨는 사람 많은 곳에 나가는 거 싫어하는데 나는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바깥활동을 내가 더 많이 해요. 아저씨가 내조를 해주니까 마음 편히 돌아다니는 거지. 내 이름이 김도자 잖아요. 복숭아 도()가 아니고 길 도()에요. 그래서 내가 평생 일이 많나봐. 그래도 여태껏 잘 살았어요. 이렇게 살아온 비결은 오로지 긍정적인 마음 때문이에요.”

 

김도자씨의 고향은 진안 부귀면. 직장생활 때문에 익산에서 자취를 하다가 26살에 31살 노총각 정영만씨와 선을 봐서 용진 지암리로 시집을 왔다. 둘 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정영만씨는 그 당시 잘 다려입는 백바지와 백구두를 즐겨 신었다고 하니 이들 신혼부부가 시골에서 뭘 해먹고 살아야 했을까. 정영만씨는 멋쟁이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전에는 양복쟁이였어요. 양복 기술자. 기성복 시대가 되면서 일이 없어지기 시작한 거지. 그때는 잘 나가는 멋쟁이였지. 대한민국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이 많이 놀러 다녔지. 그러느라 농촌 일을 늦게 시작한 편이지. 결혼해서 식구들 먹여살리느라고 시작했으니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 있었으니까 무작정 농사를 시작한거지. 처음에 참외농사를 지었는데, 이 놈의 것을 팔 줄을 알아야 말이지. 그래서 집사람이랑 참외 들고 고산장에 가서 좌판을 벌렸는데, ‘참외 사시오라는 말이 안 나오네. 집사람이랑 농사도 처음 짓고 이런 것을 팔아봤어야지. 하나도 못 팔고 있는데 해는 져가고 그래서 고놈을 다시 가지고 모래내 시장에 갔는데 거기서도 말을 못하다가 어렵게 팔고, 그렇게 시작되었지.”

 

열심히 살다보면 답이 나오는 법

어느 세월에 내 집 짓고 살까 막막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도자씨는 시골이 좋아 이곳으로 시집오긴 했지만 농사가 너무 힘들어 7년만 해보고 완주를 떠나려는 마음도 먹었다고 한다.

 

막상 농사를 시작하니까 너무 힘든거에요. 참외도 하고, 주키니호박, 애호박, 토마토, 풋고추, 오이도 해보고 진짜 안해본게 없어요. 근데 해보니까 수입이 별로 안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들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만 살다가 나가려고도 했어요. 너무 힘드니까. 근데 그게 마음먹은데로 안되더구만요. 살다보니까. 그래서 눌러서 살다보니까 지금까지 살고 있는거에요. 근데 결과적으로 안나가길 정말 잘한거 같아요. 그때 나갔으면 후회했을 뻔 했어요. 힘든 시절에 아는 형님의 권유로 복숭아를 심었죠. 복숭아 재배 하면서 패가 잘 풀려서 집까지 지어서 살잖아요. 그 전에는 우리 집도 없었어요. 게다가 장류사업까지 하게 되었어요. 복숭아가 복덩이죠.”

 

원두막 대들보에는 해마다 복숭아 수확한 날자를 적어 놓았다.

 

원두막으로 찾아온 손님들. 손님 스스로 복숭아를 깎아 먹는다.

복숭아 포장 중.

 

인생은 답이 없는 법. 일단은 살아봐야 하는 것. 이들 부부는 그저 열심히 살아보는 것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복덩이라고 부르는 복숭아와 함께 하고 있다.

 

황도는 비교적 늦게 수확한다. 8월 중순경까지 수확을 하고 나면 나무들에게 열매 따게 해줘서 고맙다고 감사비료를 주고 내년을 위해 10월경에는 퇴비를 준다.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노후를 위해 몇 해 전 부터 장류사업을 시작했다. 3000평 땅에 콩을 재배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콩 베어서 타작하고 가마솥에 삶아 메주를 만든다. 이것으로 청국장,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만들어 로컬푸드직매장에 내놓고 있다. 김도자, 정영만 부부가 어렵던 시절 복숭아가 그들에게 왔듯이, 낭만적인 노후를 위해 그들에게 콩이 찾아왔다.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김도자씨는 자신 스스로를 행복마님이라고 부른다. 행복마님 곁에는 한때 백바지와 백구두를 즐기던 우직한 머슴도 늘 함께 한다. 여느 부부가 그렇듯 찌그락 짜그락 할 때가 더 많지만 원두막에서 호흡을 맞추며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꽤 보기에 좋다.

 

백도, 황도, 천도. 복숭아를 굳이 나누자면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고 또 이 세가지에서 개량된 종들이 숱하게 많다. 산들농원에서도 열 가지가 넘는 종들이 재배되고 있다. 김도자씨에게 물었다. 복숭아 중의 최고의 품종은 뭐라고 생각하냐고. 우문현답이라 했던가.

 

그런게 어딨어요.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이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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